옛날사진

[스크랩] 영주 대수해 50년 사진전...그리고 오늘 / 이원식님의 글

지와이원 2012. 4. 6. 22:47


■ 1961년 7월 11일 영주 대수해 그날

 

그 당시 저는 영주중앙국민학교 앞에 살았고 중학교 1학년이었다.

전날밤 비가 많이 왔다. 지금 알고보니(영주시민신문 2011.7.14)

5시간동안 337mm나 왔었다네요-!

 

그 날 아침 마당에 물이 가득하고 개구리밥이 동동떠있었는데

이것이 자꾸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처마밑을 넘실거리던 물이 문지방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고

드디어 방바닥에서 30Cm까지 차올랐다.

 

도로에는 단지가 둥둥 떠다니고 핏쪽, 농짝 등 가제도구들이

둥둥 윗쪽(철탄산)을 향해 밀려올라간다.

 

일본 지진 쓰나미 같은 모습은 아니고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높은 지대로 피난을 했고 원당천 둑에 올라가 잠긴 집을

바라보며 탄식하기도 하고 원당천을 가득채워 세차게 흐르는

황토빛 물구경을 하기도 했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으나 10-11경 원당천 둑을 강제로 무너트리고

(현 아모르웨딩 지점인듯) 지금 휴천 3동(현 기관차사무소) 방향 들판으로 물을

빼냈다. 그러자 시내에 들어온 물은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와 가제도구를 챙기는 등 수해복구에 들어갔다.

 

이튿날, 온천지가 썩는냄새로 진동을 했고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날고

집집마다 쌀과 옷가지 배급이 시작됐다.

그 때 사진을 보니 감회(感懷)가 새롭고 어려웠던 60년대가 생각난다.

 

영주 대수해 50주년 사진전

일시:2011.7.11-14/장소:영주시민회관

주최"영주시민신문/주관;영주JC특우회, 영주YMCA

후원:한국수지원공사영주댐건설단

 

■ 영주 대수해 사진전을 보고 그 당시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농경사회 끝자락이었던 그 때 사람들은 원시적인 삶을 살았었다.

그 후 50년, 산업사회와 정보사회 넘어 「Global Korea」를 이룩했다.

 

1. 수해 전 모습

2. 침수 현장

3. 구호(救護)및 복구

4. 수해복구 준공식 등 당시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고품격 글로벌 인재 양성 도시 영주」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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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전 모습

 

불바우

 

수해 전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던 불바우마을!

당시 구성공원엔 나무가 없다.

 

 

지금은 구성로 373번길/1970년대 지은 목조기와집과 현대식 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숲이 우거져 불바우가 작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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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공원

 

지금 세무서 근처에서 구성공원 방향의 영교다리와 가학루모습

당시 서천은 제민루(가람솔)-주공A-구성파출소-세무서네거리-영주역 방향으로

흐르다가 우회전하여 남부초-경북전문대 앞에서 현 서천으로 흘러갔음

 

 

위 구성공원의 현재 모습

구성공원에 숲이 우거져 가학루가 보이지 않음/이 위치에 영교다리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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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송대

 

현 아카데미모텔 앞에서 봉송대 방향의 옛모습

당시 이곳은 서천 동쪽 제방(堤防)이며 정자(봉송대) 좌측 바위

낭떠러지 아래에 소(깊은물)가 있고 아이들은 이 곳에서 다이빙을 즐겼다.

 

 

아카데미에서 본 봉송대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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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현장

 

분수대

 

물에 잠긴 시내 중심지(분수대에서 구역통 방향)

 

 

현재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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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 인근

 

침수현장(구역에서 영주초 방향, 멀리 영주초가 보인다)

 

 

구역 근처/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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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당시 시내 변두리 마을

 

 

초가집과 벌거숭이산

 

 

현재 모습/인근마을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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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주역 부근 침수 현장

 

 

현 골목시장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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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천

 

 

당시 원당천변 초가집

당시 둑 안팎으로 염색,세탁 관련 초가집이 많이 있었음

 

 

현재 원당로 주변 파고라(휴식공간)/원마트 맞은편 철도건널목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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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현장

 

 

당시 원당천 제방아래 지역

당시 뚝방아래에는 가난한 초가삼칸이 많이 있었으며 뒷쪽으로 교회종탑이 보는

것으로 보아 현재 원당로 염소마을 식당 인근으로 추정됨

 

 

현재 원당로 하망동성당에서 성누가네거리 방향/

지금 원당로는 원당천이였고 우측 인도와 건물은 둑이었으며 샛골목부분부터 집이었음

현 바다횟집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K2식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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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현장

 

 

휘어진 철길(현 불바위 동편 기독병원 방향)

 

 

침수 소식에 시내로 나와 피난 걱정을 하는 시민들(당시 군청 앞 중앙통 부근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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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천

 

 

당시 원당천 제방(뚝)위로 피난 나온 주민들(현 하망동성당에서 한성약국 방향)

멀리 보이는 다리는 구 안동통로 다리로 한성약국에서 동부초 방향으로 가는길

 

 

현 원당로/당시 원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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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낙이 침수피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반쯤 무너진 집

 

 

수해복구현장/당시 영주역 서편(현 영주2동 영일건널목 부근인듯함)

 

 

철도복구/현 성누가병원 인근인듯함

 

 

수해 시찰단 헬기가 영주국민학교 운동장에 착륙

 

 

수해현장 시찰에 나선 국가재건최고위원회 의장 박정희 장군/영주역 플렛폼(platform)

 

수해현장 시찰에 나선 당시 국가재건최고위원회 의장 박정희 장군/이재민 천막촌

 

 

수해 피해 주민을 위로하고 있는 박정희 장군

 

 

피해 현장/천막촌을 찾은 박정희 장군

 

 

주한미군/수해의연금 전달식

 

 

국토건설단 환영대회(구 영주역 광장)/저멀리 경찰서와 영주국민학교가 보인다.

 

 

구영주역은 현재 기독병원-골목시장 입구

 

 

수해복구 직강공사를 위해 두입된 육군공병단

 

 

서천 직강공사 발파 현장(현 제민루와 육각정 사이)

 

 

직강공사에 필요한 자재 운송차 착륙한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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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끊는 공사장 구경하기

 

 

직강공사 현장을 지켜보고있는 사람들

 

 

당시 직강공사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서있던 자리가 현 삼판서고택 앞 낭떠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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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직강공사 발파 현장

 

 

위 서천 직강공사 발파현장의 현재의 모습

 

 

신영주 공영주택(현 신영주 천주교 부근)

 

 

수해복구 재건주택(구 동부파출소 뒷골, 영주여고 동편)

 

 

가흥교 신축공사 현장(현 꽃동산에서 가흥교 방향)

 

 

가흥교 준공

 

 

현 가흥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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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 준공식

공설운동장 인파와 가학루

 

수해복구 준공식날 모인인파(人波)/공설운동장에서 구성공원방향

 

현재의 구성공원/숲이 우거져 가학루가 보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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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 준공식장으로 향하고 있는 박정희 장군과 지역 주민 등

 

 

수해복구준공식 식전행사/초,중 학생들이 마스게임을 했음

당시 영주중학생 900여명도 매스게임(mass game) 곤봉체조을 하였음(사진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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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설운동장 본부석

 

수해복구 준공식[1961.3.31]

 

 

수해복구준공식/공설운동장 본부석

 

 

현재모습

당시 공설운동장은 지금 영주동 주공A이고 본부석은 주공A 1동과 7동사이에 있었을 것임 (뒤로 보이는 건물이 강변A)

 

 

수해복구 준공식에 참석한 주한 미군 및 외교관

 

 

수해복구 준공식(1962.3)/송요찬 내각수반(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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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설운동장

 

수해복구 준공식[1961.3.31]

 

 

수해복구 준공식 의장대

뒤로 보이는 산이 제민루(삼판서고택)가 있는 산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벌거숭이산/

나무나 풀은 모두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당시 산은 모두 이와 비슷하다.

 

위 공설운동장의 현재 위치는 주공A이다.

벌거숭이산이 숲이 우거진 산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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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 준공식에 참석한 군 의장대와 시민, 학생

수해(1961.7.11) 후 8개월만의 준공식(1961.3.31)으로 공설운동장 바닥이

발이 푹푹빠지는 모래사장 이고 울퉁불퉁하다.

 

 

수해 복구 준공식에서 군의장대의 경례를 받고 있는 당시 박정희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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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대수해 사진전시회를 주관하시고 후원하신 기관과 주무관님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리며, 필자의 사진 내용설명이 바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보(提報)를 주시면 정중히 바로잡겠습니다. 자료제공/이원식 010-4503-7586

출처 : 豊友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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