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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고려 영웅들, 극 이상의 극 '무신'

지와이원 2012. 5. 5. 22:08

 


MBC TV 대하사극 '무신'(극본 이환경·연출 김진민)이 1231년

(고종 18) 벌어진 제1차 여몽전쟁을 그리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21일 제19회에서는 압록강변 함신진(평북 의주) 전투,

22일 제20회에서는 철주성(평북 철산) 전투,

28일 제21회에서는 귀주성(평북 구성) 전투를 차례로 다뤘다.

불과 수천명의 병력으로 기병 3만명을 포함한 10만 몽골군의 맹공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고려군의 기개와 충절이 감동을 일으켰다.

이제까지 방송에서는 제1차 여몽전쟁의영웅이 여럿 등장했다.

철주성 전투의 '문대'(전노민), '이원정'(김주영), '이희적'(최덕문)과

귀주성 전투의 '박서'(권태원), '김경손'(김철기) 등이다.

사극은 정사가 아니라 정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한다.

따라서 이들이 벌인 전투에도 다소 각색된 부분이 있지만 실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문대는 압록강변 함신진 전투에서 방어장군 '조숙창'(여호민)이 몽골군에 항복할 때 함께

포로가 된 것으로 나왔으나 역사적으로는 자신이 맡고 있던 서창현에서 몽골군에 잡혔다.

몽골에 부역한 조숙창과 대비시키기 위한 설정인 듯하다.

하지만 20회에서처럼 몽골군으로부터 철주성의 고려군에게 항복을 권하라는

요구를 받고 오히려 결사항전을 호소하다 참살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문대의 장렬한 최후는 고려군과 백성들에게 공포보다는 항전 의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이에 힘입어 주수 이원정과 판관 이희적은 '무신'에서처럼

몽골군의 파상공세를 민관군의 힘을 합쳐 막아낸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이원정이희적은 옥쇄를 결심하고 자신들의 처자는

물론 성내 부녀자와 어린이를 창고 안에 들어서게 한 뒤 불을 질러 죽인 뒤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끝내 성이 함락되자 이희적은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이원정은 성곽에서 뛰어내려 자결한다.

드라마에서는 몽골군과 싸우다 전사하는 것으로 극화됐다.

이원정의 경우 드라마에서는 무신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는 문신이다.

고려 후기 김지대가 지은 한시 '과철주'를 통해 확인할 수 잇다.

백면서생인 이원정이 40여개 성이 함몰당하는 처절한 전투 속에서도 장병들의 투혼을 한 곳에 모아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사랑과 신의로 백성들을 다스려 온 치적에 있었다고 칭송하고 있다.

서북면 병마사 박서와 정주분도장군 김경손은 몽골군이 한 달을 공격하고도

결코 함락시키지 못한 철옹성 귀주(구주)산성의 기적을 일궈낸 명장들이다.

박서김경손과 삭주분도장군 김중온 등과 함께 우세한 화력과 각종 신무기를 앞세워 공격해

오는 몽골군에 맞서 임기응변을 바탕으로 분전함으로써 1개월에 걸친 항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해 12월 구주 공격을 포기하고 개성을 먼저 함락시켜 고종의 항복을 받은

몽골군이 귀로에 다시 귀주를 공격해오자 또 다시 접전을 벌인 끝에 물리친다.

김경손은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몽골군을 맞아 12인 결사대로 돌파해 승기를 돋웠다.

이를 지켜본 박서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그에게 지휘권을 맡긴 것도 역사에 기록돼 있다.

또 몽골군의 투석 공격으로 지휘소 지붕이 무너지고,

옆의 병사의 머리가 박살날 때도 "내가 물러서면 민심이 흔들린다"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지휘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김준'(김주혁)이다 보니 김준이 결사대 12인의

몽골군 기습 작전을 제안하고 김경손이 이를 박서에게 요청해 관철시킨 것으로

그려졌으나 김준은 당시 구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21회에서는 서경(평양) 근방에서 몽골군의 기습을 받아 위기에

빠진 고려군을 '김윤후'(박해수)의 승병들이 구출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김윤후는 어린 시절 승려였던 김준에게 무예를 가르친 호법승 '강스님'이다.

김준이 승려였던 사실이 없으니 두 사람의 인연은

사실상 없지만 김윤후가 승려(경기 평택 백현원)였던 것은 맞다.

김윤후는 1232년의 2차 여몽전쟁 때 처인성(용인)

전투에서 몽골군 대원수 '살리타이'(이동신)를 사살한다.

이 복선을 깔기 위해서인지 이날 방송에서는 궁수로 등장했다.

김윤후는 처인성 전투의 공으로 상장군으로 제수됐으나

자신만의 공이 아니라며 사양하고 낮은 급의 무관이 되는 것에 만족했다.

1253년(고종 40) 충주산성 방호별감이 된 뒤 몽골의 5차 침략군과 70여일 동안 싸워 패퇴시켰다.

항전이 장기화하면서 성안의 식량이 바닥나고 민심도

동요하자 노비문서를 불태우며 포상을 약속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충주성 함락에 실패한 몽골 주력군은 결국 포위를 풀고 고려에서 철군했다.

21회까지는 활약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주성의 영웅 '최춘명'(임종윤)도 있다.

1일 제14회에서 최우(정보석)의 정적인 동생 최향(정석모)의 부하 장수로 권력투쟁에서 최향

패한 뒤 처형을 당할 처지에 놓였으나 죽마고우인 김경손에 의해 구명된 것으로 그려졌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최춘명은 1차 여몽전쟁 당시 자주(평남 순천) 부사로

있으면서 몽골군에게 포위된 성을 사수하며 항복하지 않았다.

고려와 몽골 간 화의가 이뤄진 후 조정에서 항복을 요구했으나 거부했다.

몽골 관리들의 압력으로 서경에 투옥됐다가 처형 위기에 놓이지만

살리타가 "몽골에는 거역했지만 고려에는 충신이니 죽이지 말라"고 배려해 석방됐다.

시청자들은 "'무신'을 통해서 세계 최강이었던 몽골이 어째서 고려를 자신들이

속국으로 삼았을 뿐 몽골제국 영토로 편입시키지 못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면서

 "그처럼 강렬히 항거한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며 새삼 애국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대, 이원정, 이희적, 박서, 김경손, 김윤후

 


2012,4,30

서울=뉴시스 김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