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도굴된 순금 가야금관 호암미술관에 있는 까닭

지와이원 2012. 5. 8. 18:01

 

“이병철-맹희 부자 갈라놓은 건 삼성 가신그룹”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카이.  

 굼벵이도 꿈틀거린다 안 카더나.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기라.’

1984년 9월 중순 어느 날 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장남 이맹희는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한 손엔 브라우닝 6연발 엽총이 들려 있었다.

이윽고 현관문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오더니 주춤 거리며 말했다.

“삼성 비서실에서 왔습니다.” 이맹희는 방아쇠를 당겨댔고, 사내들은 문이 부서져라 달아나기 바빴다.

최근 출간된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는 이런 소설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중앙일보> 기자로 영남총국장까지 지낸 이용우(72) 작가가 쓴 ‘논픽션’이다.

이 작가는 8일 <한겨레>에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에 대해 잘못된 이야기들이 떠돌아

이 책을 쓰게 됐다”며 “지난 2월 탈고했는데, 마침 삼성가의 소송전이 터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계열사이던 중앙일보의 대구 주재기자로 삼성가의 뒤치다꺼리를 해오며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씨의 부탁으로 이맹희씨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책머리의 이맹희씨가 엽총을 쏘는 장면에 대해 이 작가는

“이맹희씨를 정신병자로 몰아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크게 세가지를 주장한다.

우선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 이맹희씨의 부자관계에 금이 간 이유다.

1967년 7월 이병철 회장은 재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장남 이맹희씨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겼고,

 이맹희씨는 그때로부터 7년간 경영 전면에 나선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이맹희를 정점으로 한 2세 오너 경영은 애초부터 곡절이 많았다.

 맹희 총수의 독선적 경영에 반기를 든 가신그룹의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썼다.

이맹희씨가 삼성의 ‘창업공신’이나 ‘경륜 많은 임원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들의 불만이 이병철 회장에게 곡해돼 전달됐고,

이게 쌓이면서 부자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면에는 장자 승계 원칙을 깨고 막내 건희를 옹립하려는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 등 가신그룹의 음모 때문이라는 설도 나돌았다”고 적었다.

그는 “(가신그룹이 포진한 삼성 비서실이) 중앙일보 편집국의

중견급 기자들까지 정보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항간에는 중앙일보에 대해 ‘SCIA’(삼성정보부)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붙어있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병철-맹희의 부자 관계가 깨지면서 이맹희씨가 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한 것은,

알려진 것처럼 이맹희씨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이병철 회장 주변의 고위 임원들과 혼인관계로 얽힌 일부 세력의 견제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맹희씨의 <묻어둔 이야기>

에서는 홍진기 전 회장을 ‘존경한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이병철 전 회장이 제일제당을 이맹희씨의 맏아들 이재현

현 씨제이(CJ) 회장에게 상속한 것이라는 이건희 회장 쪽 주장도 반박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달 17일 “(이병철) 선대 회장 때 벌써 다 분재(재산 분배)가 됐다.

각자 다 (분배받은) 돈을 갖고 있고 씨제이도 갖고 있고 뭐도 갖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크다 보니까 욕심이 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미 정당한 상속이 모두 이뤄졌으며,

현재 이맹희씨 등이 이병철 회장이 보유하던 차명주식 등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잘못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과거 이재현 회장의 어머니인 손복남 씨제이 고문이

보유하고 있던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와 제일제당이 서로 맞교환된 것일 뿐,

상속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그룹은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했지만,

손복남 고문의 아버지인 손영기 회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해왔다.

또한 안국화재의 지분 19.6%는 손복남 고문이 보유해왔다.

그러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던 제일제당 지분과

손복남 고문이 보유한 안국화재 지분을 맞바꾸게 된다.

이 때 삼성전자 이사로 있던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 상무로 발령이 났고,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당시 안국화재 부회장이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이동했다.

아울러 이건희 회장의 매형인 이종기 당시 제일제당 부회장은 안국화재로 넘어갔다.

이로써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의 품에서 벗어났고, 안국화재 역시 이 때 이름을 삼성화재로 바꿨다.

이에 대해 씨제이그룹 고위관계자는 “손복남 고문이 안국화재 지분을 계속 갖고 있었다”며

“안국화재 지분과 제일제당 지분을 바꾼 것을 상속 받은 것이라고 하면 그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병철 회장이 안국화재를 인수하고 나서

맏며느리인 손복남 고문에게 미리 재산 배분을 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더 나아가 이병철 회장이 갖고 있던 각종 문화재급

골동품을 이건희 회장이 상속 받지 않았는데도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문화재는 국보인 고려청자 진사연표형주자, 고려청자 상감운학모란국문매병, 순금제 가야금관 등이다

그는 “이들 문화재는 이병철 회장이 진작에 공익재단으로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한 사회적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며 “그러나 고스란히 이건희 회장의 개인재산 목록에 올라 있고,

호암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것을 리움미술관으로 옮겨 관리·운영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한 “삼성가 형제들은 ‘아버지가 건희한테 개인적으로

상속한 일이 없다’며 단호히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고려청자 진사연표형주자는, 과거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1969년 벌인 ‘청와대 투서사건’과 관련된 문화재다.

이 때 이창희 전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이 청자를 사들이기 위해

삼성물산 도쿄지사에서 100만달러를 전용했다는 내용도 투서에 포함시켰다.

순금제 가야금관과 관련해선 이병철 회장의 형인 이병각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1966년 가야금관은 도굴된 것으로 확인됐고,

이 금관과 신라 금동불상 등을 서울 인사동에서 사들인 이병각씨는 1966년 9월20일

장물 취득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개인소장품 226점을 압수당한다.

당시 신문들은 이병각씨가 경찰에서 “장물로 각종 국보를 매입했다고 자백했다”고 보도했다.

그 이후 이병각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작가는 이와 관련해 “가야금관 등은 장물로 검찰에 압수돼 있었으나 사건 종결과

함께 동산문화재로 등록, 이병철 회장이 건립한 호암미술관에 소장하게 됐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쪽은 “이들 문화재 역시 상속재산으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2.05.08

한겨례 김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