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스크랩] 5.16 군사 쿠데타

지와이원 2012. 12. 1. 22:44
 

 

 


5.16 혁명(쿠데타)의 성공과 혁명공약을 소개한 1961년 당시의 영상물.

 

1961년 5월 16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처음으로 언론에 노출된 육군 소장 박정희(朴正熙)는
선글라스를 쓰고 뒷짐을 진 채 5·16의 상징처럼 돼 버린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
사진을 촬영한 조선일보 기자 정범태는 "그는 차갑고 무뚝뚝했다.
저런 사람이니까 혁명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날 새벽에 라디오 방송을 들은 국민들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今朝) 미명(未明)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어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義)로 삼고, 모든 부패와 구악(舊惡)을
일소하며,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악'이나 '기아선상' 같은 어휘들이 이 '혁명 공약'으로 인해 일상어가 됐다.

그것은 육군참모총장 장도영(張都暎)의 이름으로 된 공약이었으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이미 4·19 전부터 '거사'를 논의했으며 그날 새벽 군대를 움직여 서울에 무혈 진입했고,
전 육군 중령 김종필(金鍾泌)이 초안을 잡은 혁명 공약의 최종 교열을 본 사람은 모두 박정희였다.
그날 발행된 조선일보 석간, 이튿날 조간은 서슬 퍼런 검열의 상황에서도 이 사건을 '군부 쿠데타'로 규정했다.
헌법 절차에 의해 수립된 정부를 일부 군부 세력이 불법적으로 전복한 일은 분명한 쿠데타였다.
문제는 정작 당시의 국민들이 이 쿠데타에 대해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보세력을 대변한 잡지 '사상계'조차 '혁명'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출간된 한 연구서에서 현재 좌파 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성공회대 교수 조희연은 이렇게 말한다.
"쿠데타 세력에게는 부패한 정치권과 국가권력을 개혁해야 한다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지향이 있었다.
" 한국인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게 될 '산업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야말로 바로 그 '순정(純情)'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가운데)이 박종규 소령(왼쪽),
차지철 대위(오른 쪽)와 함께 서울시청 앞에 서 있다.
5.16 당시 중앙청에 진주한 해병대
5.16혁명때 박정희 소장
5.16혁명때 박정희 소장
5.16 당시 거리에 나온 혁명군


덕수궁에서 경복궁으로 공수당본부 이전하고 나서
박정희 소장 방문. 왼쪽은 박종규소령, 그다음이 박치옥대령


덕수궁에 진주한 공수단. 공수단은 1961년5월16일 새벽,
해병대의 뒤를 이어 서울시 요소에 배치됐다.


1961년5월16일 새벽 4시「군사쿠데타」시민들이 운집


5.16 혁명 성공직후 시청앞에서 장도영 육군참모총장과 박정희 장군이 서 있다.


1961년 5월 18일 서울 롯데호텔 건너편의 미국문화원(당시 미대사관 건물)
앞을 통과하는 5.16쿠데타 지지 육사생도들의 시가행진


1961년 5월 20일 열린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석한 장도영총장과 박정희 장군.


혁명군과 기자회견


박정희 최고회의의장時


5.16군사혁명 2개월이후 박정희


1961년 8월 12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군사정부의 정권이양계획을 발표하고 있다.(8.12 성명)


반혁명음모사건


1961년 9월 25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신청사 이전 기념하며
박정희 의장과 최고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시무식을 거행하고 있다.


10월27일 상오 군부반혁명행위사건 첫공판 3피고, 장도영,방자명,김석률


증언하는 유원식 준장(왼쪽) 장도영 피고


군부반혁명사건 장도영사건에 증인으로 나온 이강태 이경재 강정호


반혁명음모사건




반혁명음모사건, 함병선 예비역 중장,


반혁명사건 3차 23피고 구형공판석에 울음바다를 이룬 가족


반혁명사건 24명 공판의 아침 법정앞 광경


반혁명 공판 24명 구형공판


1961년 국방부 예산을 심의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예산심의 특위


1961년 5월 16일 미명을 가르며 한강을 넘어 온 해병대 공수단. 이들은 덕수궁에 진주했다.


1961년 5월 16일 서울에 진주한 군사정변의 수뇌부. 박정희, 박종규(좌), 차지철(우).


5.16 발발 이틀 후 장면 총리가 중앙청 국무회의실에서 비상각의를 소집,
내각 총 사퇴를 의결한 후 기자들에게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5.16 쿠데타 이틀후인 1961년 5월 18일 장면은 총리직을 사퇴했다.
황망중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테 굵은 안경까지 잃어버린 채 고별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장면.


1961년 8월28일 군내부반혁명행위사건의 제8회 공판이 개정하였다.
5.16 당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예비역중장을 비롯하여 서종철 6관구사령관 소장,
506특무대장 이희영대령 등 3명에 대한 증인신문과 사실심리를 종결하였다.
사진은 증언하고 있는 장도영 전 참모총장.


1961년9월15일 정부신청사의 낙성식이 서울세종로 신청사내에서 거행되었다.
총독부자리인 중앙청이 5.16혁명으로 내부가 손상된 후 제국주의의 산물인
총독부건물을 헐어버리고 새로운 세대에 알맞는 중앙청건물을 지은 것이다.
사진은 새로지은 정부청사의 모습.


610923. 5.16군사 혁명을 지지하는 연예인들의 시가행진이 종로 거리를 지나고 있다.


610729. 5.16 군사 혁명 후 열린
혁명 재판을 방청하려는 방청객들이 재판정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610729. 3.15 부정선거에 대한 혁명 재판이 열려
이를 방청하기 위한 시민들이 줄을 서 입정을 기다리고 있다.
1호 법정에서 최인규 피고에 대한 공판이 열림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다.


1961년 10월1일 5.16군사정변 직후 만 28세이상의 병역미필자에 대한
사회적 구제를 도모하기 위해 국토건설단을 조직해 건설현장에 투입했다.
제1차 연도인 1962년에는 예비역장교 3000명을
기간요원으로 하여 3월15일부터 1만4000여명의 건설단원이 동원되었다.
사진은 서울역에서 환영식을 하고 있는 모습.


혁명내각의 각료들 기념촬영


7월8일 혁재 및 혁검부장 임명식.


7월8일 신임장관등 윤보선대통령을 예방.


6월22일 신임 장관 윤보선대통령을 예방.


7월8일 임명장수여식 광경.


이동환 주일공사 취임선서식.


5.16혁명관련 외신보도.


6월21일 호속을 시찰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소장(앞에서부터 두사람째).


8월19일 송요찬 내각수반이 박춘식 교통부장관, 황인성 외자청장에게 임명장 수여.


임명장 받는 송요찬 장군.


기획조정관들에게 임명장 수여.


6월22일 김유택 재무, 신태환 건설 양부장관이 임명장을 받고 있다.


5월21일 혁명내각의 각료들이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6월22일 김유택 재무, 신태환 건설 양부장관이 임명장을 받고 있다.


5월21일 혁명각료들에 임명장을 수여하는 광경.


12월22일 교포실업인들을 만난 박정희최고회의의장.


5월29일 장도영혁명내각수반 내외기자회견.


61년 9월21일 신축된 국가재건최고회의 청사에 사무집기가 들어가고 있다.


61.12.20 처음으로 공개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회의 광경.


7월8일 서울운동장에서 막올린 군사혁명체육축전의 호화로운 마스게임.


재건체조를 하는 직장인들.


배재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재건체조강습을 받는 동직원들.


혁명완수궐기 연예인대회.


시가를 행진하는 문화예술인들.


깡패들의 행렬...이름표를 붙이고 시내를 일주했다.


깡패들의 행렬...이름표를 붙이고 시내를 일주했다.


깡패들의 행렬...이름표를 붙이고 시내를 일주했다.


재건국민운동市郡촉진회 부회장 회의.


6월26일 대구시 칠성동 종합운동장에서 거행된 재건국민운동 경북도민촉진대회.


6월26일 대구시 칠성동 종합운동장에서 거행된 재건국민운동 경북도민촉진대회.


6월12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국가재건 범국민운동촉진대회.
오른쪽에서부터 윤보선대통령, 박정희부의장, 장도영의장이 만세를 부르고있다.


국민운동본부 중앙위원위촉식의 전경.


재건국민운동 시군촉진회 부회장 회의.


제7회 공판정에 선 장도영피고. 오른쪽에 증인 김신장군.




군부반혁명행위사건 첫 공판 전경.


반혁명사건 구형의 날-피고들이 검찰관의 논고를 듣고 있다.


11월27일 청와대로 윤보선 대통령을 예방하고 귀국인사하는 박정희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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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열 린 바 다
글쓴이 : 아름아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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