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동란

[스크랩] 1.4 후퇴 상기하자 !

지와이원 2012. 12. 7. 23:55

 

 





1.4 후퇴 상기하자

이 메일을 접하니 1,4후퇴시 원산부두에서 도보로 피난길에 올랐던 생각이 납니다.

흥남부두에서 딸의 손을 놓친 아버지의 이야기

굳세여라 금순아 현인의 대 히트곡 ***영화 굳세여라 금순아***

우리는 이 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날을 길이길이 기억하고 되씹어 이러한 불행들을 겪어선 안되도록 해야겠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금순이 남매도 피난을 떠난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1.4 후퇴 당시 흥남 부두에서 헤어지게 된 남매는 그 후로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애써 서로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가고 지친 금순은 끝내 병을 얻어 몸져 눕고 만다.

이에 친구들이 그녀를 도와 오빠를 찾게 되었으나 그녀의 병세는 이미 절망적이다. 오빠는 금순을 안고 죽어서는 안된다고 몸부림 치지만, 금순은 오빠의 행복을 빈다..


공산군 치하에서는 못 살겠다고 피난 또 피난
철수하는 LST미국 군함을 얻어 타려고 몰려든 피닌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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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후퇴)하는 미국 군함을 타기위에 흥남
항구에 몰린 피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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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과 군함 후퇴하는 다국적군과 피난민의 북새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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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군과 피난민14,000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떠난후 군수물자를 폭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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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역을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부산을 향해
목메인 기적 소리를 울리며 칙칙폭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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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출발한 피난 열차의 종착역은 무조건 부산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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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안이 좌석이 없자 화차위에도 피난민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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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소리와 함께 흥남서 부산까지 달리는 열차가 힘겨운듯 목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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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은 고향을 버린 실향민으로 반세기가 넘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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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위에타고 졸다가 터널에서 많은 목숨도 잃어가며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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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얼음위를 건너 1.4후퇴 서울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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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과 마지막열차를 못탄 피남민과 후퇴하는 한국군이 어우러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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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피난민을 수용할 국가적인 능력도 없어 항구와 역전에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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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판자집에서 어려운 피난살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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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바닥 노점상으로 움막살이와 피난살이를 영화화한 굳세여라 금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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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꾸리죽과 다목적군의 군복으로 추위를 견뎠다.
꿀꾸리죽 = 미군의 음식쓰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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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뻥튀기는 그들의 밥벌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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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퍼다가 식수로 사용한 피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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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먹여 살리려고 엄마는 피눈물을 흘려야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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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노숙자로 죽어야 했던 1.4후퇴 피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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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짐을 운반해주는 지갯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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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온으로 고향을 그리며 마음을 달래보는 거리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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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배가 지날때 다리를 들어 올리는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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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팔이 소녀, 피난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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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물, 산에다 지은 집은 아파트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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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름도 유명한 판잣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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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과 취사는 석유곤로에 의존했다.
석유곤로는 당시에 없었고 60년대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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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에 복원해놓은 판잣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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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판지로 지은 판잣집이 노점상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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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어라 금순아, 하숙생, 전쟁당시 판자집에는
다닥다닥 영화포스타가... 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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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아리랑 담배로 외로움을 달랜 담뱃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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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어라 1953년 굳세여라 금순아
현인이불러 대구에서 시작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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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분발하라! -김동길-

요새 흔하게 행해지는 여론조사가 대개 전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벨이 울려서 수화기를 들면 여론을 조사 중이라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여든 다섯이외다.”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해당이 안 되십니다.”라고 한 마디 하고 전화는 끊깁니다.

인생을 체념하고 사는 80대에만 그런 서러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내가 딸처럼 여기는 60대도, 친구로 지내는 70대도 그런 불쾌한 경험이 있다고 나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정치’라는 것이 우리를 이렇게 홀대하는가!” 노인들의 비슷한 심정입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시대’의 버림을 받은 오늘의 늙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인민군의 남침을 막아주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들이 피를 흘리며 싸워주지 않았으면 우리들의 살림이 ‘김 씨 왕조’의 포악한 정치에 시달리는 ‘북’의 2 3백만 우리 동포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하루 10시간 노동을 감수한 당시의 20 30 40대가 오늘 60도 되고 70도 되고 80도 된 것이 사실 아닙니까. 국가경제의 규모가 세계 20위 안에 들어있고, 어느 수준의 민주적 질서도 마련할 수 있어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나 가다피의 리비아 신세를 면하고, 떳떳하게 18대 대통령선거에 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젊은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오늘의 노인들이 되었건만, 여론 조사하는 아가씨에게까지 이렇게 홀대를 당하면서 이 ‘한 많은’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합니까?

어느 선거의 계절에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60 넘은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쉬세요”라고 한 마디 했다가 호되게 얻어터진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요 망종 같은 자가 한번 대선에 출마했다가 노인들의 몽둥이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나가떨어진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늙은이들이여, 힘을 합하여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온 이 조국을 또다시 위기로 몰고 가는 이 악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나아갑시다. 승리는 우리의 것!


출처 : 향기좋은우리카페
글쓴이 : 호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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