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3 (수첩을 꺼낸다)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크리트 정신에 관해서다. 시크리… 비밀, 깜깜하다는 뜻이지. 에스 이(포기) 너희들이 좋은 자리를 받고싶어 한다는 거 안다. 궁금하겠지만 조금만 참아라. 그걸 참는 것도 일종의 훈련이다.
넘버4 알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수첩에 적는다. 수첩엔 ‘시크리… 한글로 에스 이’라고 적혀 있다.)
넘버3 너희들, 총리·장관이 잘나가다가 요즘은 왜 빌빌대는지 아냐? 다 시크리트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엔 다들 부동산 투기도 하고, 군대 면제 먹은 후에도 될 건 다 됐다. 총리·장관뿐만 아냐. 그, 누구야, 엠디도 할 거 다하고 청기와집으로 갔다 그말이다.
넘버5 (수첩에 영어 철자로 MD라고 적다가 주책없이) 엠디가 아니라 엠비입니다.
넘버3 (흥분해서 넘버5를 사정없이 패기 시작한다) 잘 들어라. 내가 하늘이 빨간색이다 하면, 그 순간부터 하늘은 빨간색이야, 내가, 엠디라면 엠디다. 내 말에 토다는 것은 배배배배-배반형이야. 암튼, 그런… 그러니까… (무슨 말을 했는지 까먹었다.)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넘버4 시크리트 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넘버3 그래 시크리트 정신이 필요하다 그말이야.
뜻밖의 인사였다. 인수위원장이 정부의 초대 총리가 되는 셈이었다. 깜깜이 인사였지만 여권에서는 누구도 토달 수 없었다. 며칠 후 총리 후보자는 낙마했다. 영화 ‘넘버3’의 유명했던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글·윤무영 | 그림·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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