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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난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지와이원 2013. 8. 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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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난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론 나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지난 한 평생

    나는 호리의 순간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이고 싶지 않다.

    더욱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은 절대 사절한다.

 

    세차를 한다.

    마당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아들이란 사람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다.

    그는 자기 가족들을 태우고 내일부터 처갓집에 간단다.

    휴가기간 내내

    처갓집에서 놀다 올 계획을 오래전부터 세워두었는가 보다.

    타이어도 새로 갈고

    이것저것 착실히 준비를 해 둔 것이 한 눈에 다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식탁에서 며느리가 하던 말이 또렷이 기억난다.

    친정에 가기 위해서

    그가 휴가를 신청하였으니 그리 알라고 했다.

    물론 이건 내용이다.

    형식은 언제나 완벽하다.

    하지만 가장 완벽한 통보는

    언제나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춘다.

    나는 그것을 안다.

    의견을 묻기 전에 이미 결정지어져 있는 사안에

    토를 달면 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다.

    며느리가 친정엘 간다고 했다.

    가서 장장 20일이 넘도록 있다 오겠단 거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간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누어서 두 번 다녀오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했다.

    그러나 그 말 한 마디 했다가

    그날 얼마나 혼쭐이 났던 것인지 모른다.

    특히 아들이라는 사람이

    도끼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데

    겁이 나서 사망하실 것 같았다.

    난 비교적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다.

    아직은 치매기도 전혀 없다.

    그래서 이젠 친정 가서 아예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다!

    해도 입도 벙긋하지 않을 것이다.

    고백하거니와,

    난 사실 내 명대로 다 살다 가고 싶거든.

 

 

    물 호스 끝에서 씻겨나가는 비누거품이 가소롭다.

    할 일을 모두 마치면 스스로 알아서 씻겨 나가는

    저 모습이 혹여 내 모습은 아닐까.

    신세 너무 처량하고 초췌해서

    왈칵 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저 서러운 모습.

 

 

    잠시 그친 장맛비 사이로 푸른 속살을 드러낸 하늘이

    뉘엿뉘엿 내게로 다가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찢어지는 듯 가슴이 아픈 걸까.

    아무리 다가와도 하늘은 나에게서 너무 멀기만 하다.

 

    왜 세차를 했느냐고,

    왜 쓸데없는 일을 한 거냐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그들은 또 핀잔 섞인 어투로 투덜거리겠지.

 

    차를 닦는 속뜻은 아랑곳없고

    말끔하게 닦여 있는 자동차만 눈에 보이겠지.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내가 자신들의 아버지임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거다.

    보라,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해서 아들네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말끔히 세차해 주지 않는가.

 

    만년 무자다.

    두들겨도 짓밟아도 심지어는 몽둥이로 갈겨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던 벙어리 삼룡처럼

    변함도 없고,

    변할 줄도 모르는 부모여야

    진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거다.

    당연히 제자리를 지켜야하고,

    당연히 변해서는 안 되는 머슴 중에서도 상머슴을 두고

    그들은 심심할 때 한 번씩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고 불러주는 거다.

    이 얼마나 황공스런 일인가.

 

    효자질이라고 한다.

    효자병이라고 한다.

    효자놀이라고도 한다.

 

    요즈음 이 땅의 며느리들

    만들어낸 조롱과 비꼼의 단어들이다.

    그녀의 남편들이 그 부모들에게 가끔 한 번씩이라도

    친절이나 호의를 베풀라치면

    구원의 투수처럼 득달 없이 등장한다는

    이 단어의 어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려서는 오로지 효자가 되게 해 달라고

    그 아버지와 함께 연을 만들어 하늘에 띄우던 그 아들이

    지금은 효자병에 걸려서 효자질이나 하고 있던지

    혹은 제 각시와 함께 낄낄거리며 효자놀이에 빠져 있다.

    효도란 말이 이토록 참담하고

    비참한 내용을 품고 있는 말인 줄은 정말 몰랐다.

    모르고 살아왔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시대가 그렇다.

    세상이 그렇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다.

 

    아폴리네르였던가.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고 노래했었지.

    왜 그는 센 강 위에

    미라보 다리가 놓였다고 노래하지 않았던 걸까.

    그러게 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나를 떠난 것이다.

 

    스스로를 달랜다.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남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내가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라면

    내가 더 이상 아버지일 수 없도록 만든 것은 누구일까.

 

 

    세월이다. 아니다, 바람이다.

    아니, 아니다! 담배다.

    아무려면 또 어떠하겠는가.

    그냥 난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삶을 좀 살아보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 후지고 촌스런 삶으로부터

    깨끗이 해방되어 새 삶을 살고 싶다.

    이대로 사위고 말 삶이라면 너무 억울하고 서럽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의 모든 자리에 사표를 던진다.

    나도 한 번 지구의 중심에 자리를 잡아보는 거다.

    나도 한 번 주인공이 되어보는 거다.

    오로지 나를 위하여,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살아보는 거다.

    멋지지 않겠는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새로운 여인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방법으로 우정을 교환 할 것이다.

    이참에 돈도 좀 벌어야 하겠다.

    나를 위해 투자하고

    나를 위해 소비도 한 번 해 보는 거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무엇을,

    누굴 위해 일하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다.

    모든 것이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사업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난생처음 營利를 위한 일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실은 오랜 기간을 생각해 오던 일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殘命이 얼마나 될 것인가가

    좀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너무 늦은 시기는 아니다.

    난 이제 더 이상 아버지도 아니다.

    그 자리에 사표 던진 지 이미 오래 됐다.

    그러니 이젠 정말

    나도 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도 이젠 정말 내 자리 하나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잔명이 모자라면 초석이라도 놓으면 될 일이다.

    전체 국가사회는 몰라도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것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일이 결국은 나를 돕는 일이다.

    요즈음은 그 밑그림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최종 목적지를 향하는 기쁨은

    최종 목적지에 이른 기쁨에 못지않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 듯 나는 또 한 번 새사람이 되어 있겠지.

    나는 결코 늙고 병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기대한다.

    나는 반드시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고동치기 시작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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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향기좋은우리카페
글쓴이 : 地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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