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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보았던 풍경 하나가 장례식에 갈 때마다 떠올라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란 소꿉 친구의 집안 장례식에 얽힌 이야기다. 친구의 아버님이 직장암 말기로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장례 이야기가 오갔다. 둘째 오빠는 신도회장까지 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여자는 빠진 상태에서 남자 형제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형제는 정작 장례식을 어떤 식으로 치룰 것인가에 결론을 보지 못한 사이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아버님 살아 계실 적 아버님이 예수님 영접하길 바라던 큰 오빠는 나에게 둘째 오빠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장남으로서 큰 소리 칠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도 밝혔다. 둘째가 그간의 모든 병원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둘째가 형의 말을 안 듣는데다가 자신보다도 집안에서의 목소리가 더 크다는 것이었다. 장남으로 병원비용은 마땅히 형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형의 대리점 사업도 문을 닫은 상태라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둘째 오빠가 그간의 모든 병원비용을 떠맡았었다. 큰 오빠 작은 오빠가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자 여자들 포함 모두 여섯 명인 자식들은 두 편으로 서로 갈라섰다. 일주일 후 아버님이 돌아가실 즈음엔 서로 말을 하지 않을 만큼 사이가 나빠 있었다. 큰 오빠가 장로로 계신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 집사, 권사님 몇 분이 들어왔다. 조용히 한쪽 구석에 앉은 목사님은 눈을 감고 기도를 하셨다. 스님은 목사님에게 머리 숙이며 합장을 했다. 목사님은 스님의 두 손을 맞잡으며 따스한 인사를 건네고 스님도 두 손을 꽉 잡고 반가워 했다.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두 사람은 가까워 보였다. 두 분 사이엔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것이 있어 보였다. 자 이제 목사님 차례가 왔습니다.” 하며 자리를 뜨려 하자 목사님은 “스님에게 우리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하며 합장을 해보였다. 그러자 스님은 문까지 배웅하는 목사님에게 “목사님께서 우리 아버님 꼭 천당가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하며 발 길을 멈췄다. 잠시 씁쓸하기도 한 미소와 함께 멋적은 표정이 섞였다. 그리곤 교회와 절에서 온 조문객을 맞는데 벽이 없어 보였다. 장례식을 두고 신앙 때문에 일어난 형제간의 불협화음이 이 두 성직자들로 인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굳이 “내 식”, “네 식” 고집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열린 마음을 가진 성직자의 면모를 새삼 보게 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시각이 항상 자기 것에만 갇혀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이런 이야기에 김경섭 박사님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박사님은 전남 고흥의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태어났다. 남동생 한 분은 기독교, 한 분은 불교, 막내 여동생은 카톨릭이다. 박사님 집안은 형제간 우애가 좋기로 장안에서 소문난 집이다. 그런데 8 년 전 형제들은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며 약간의 진통을 겪어야 했다. 문제는 “어떤 종교 의식으로 장례를 치를 것인가” 였고 세 가지 종교적인 배경으로 인한 다른 의견이 나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어머님의 뜻을 받는 장남으로서 기지를 발휘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다르니까 거기엔 분명 좋은 점이 있다. 그러니 각기 다른 점을 조화시키자” 였다. 천주교 식, 기독교 식, 불교 식의 세 종교로 추모 행사를 번갈아가며 했다. 그럴 때 박사님은 “극락 간다는 데 거기 좋은 곳 아닌가” 하고 대응 했다. 불자인 가족이 교회에서 온 조문객의 찬송에 대해 불만이 들어오면 “천당 가게 해 준다는데 뭐가 나쁘냐” 고 응수했다. 기독교인 가족들은 '십자가'를 강력 주장했다. 결국 입관에는 십자가와 금강경이 같이 들어 가도록 했다. 결국 여러 종교의 의식을 거치는 추모행사로 바뀌었다. 자식은 어머니에 대해, 며느리는 시어머니에 대해, 사위는 장모님에 대해, 손주들은 할머님에 대해, 각자가 생존 시 어머님, 할머님과 관련되어 떠올리는 기억을 모아 모두 6 명이 어머님 영정 앞에 추모문을 올렸다. 모든 증손주들은 꽃 바구니를 헌정함으로써 할머님을 기쁘게 보내 드렸다. 흔히 울음바다로 시작해 장지까지 눈물만 보이는 장례식과 대조되는 광경이었다. 반드시 슬퍼하고 많이 우는 것만이 추모는 아니지요. 가족과 친인척을 중심으로 반드시 어머님과 알고 지내던 분에게만 부고를 했고 부조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이젠 우리의 장례 문화가 조금 바뀔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어머님 영정 앞에 절하는 의식을 놓고 기독교인 가족들의 이견이 나왔다. 다시 한번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 온 것이다. 박사님은 제사를 1년에 한번 온 가족이 모이는 추모모임으로 바꾸고 형제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절을 할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해도 좋다’ 하고 못을 박았지요. 대신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그립습니다’ ‘어머님, 존경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제사에 임하도록 했지요.” 다름의 차이를 조화로 이끌어 내는 분에게 난 큰 공부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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