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사진

[스크랩] 백의민족白衣民族

지와이원 2016. 5. 2. 20:02

백의민족白衣民族

 

흰옷 즐겨 입고 흰색 숭상하는 오랜 전통에서 유래하여, ‘한민족1()’ 이르는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울산장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895년 무렵

울산시장

 

출처:http://blog.daum.net/bt7155/41

 

백의민족白衣民族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일명 백민(白民)이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19세기에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남녀를 막론하고 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오페르트(Oppert,E.J.)는 그의 ≪조선기행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Laguerie,V.de)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895년 전국에 변복령(變服令)과 단발령이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의병전쟁이 일어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는 백의를 숭상하는 한국인의 집착이 남달리 강했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 뒤 일제하인 1920년대에도 백의의 습속은 여전하여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 유래의 오래됨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는 또한 “종교적으로나 예식상에 입는 옷은 따로이 생각하려니와 일반으로 무상시기 입는 옷을 희게 함은 첫째 시대를 맞출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라 할 것이다.” 하면서 백의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지식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복 전후까지 검은옷[黑服]입기를 완강히 거부한 것이 우리 민족의 고집이었다.

 

일제식민주의자들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까닭을 여러 모로 왜곡하였는데, 가령 도리야마(鳥山喜一) 같은 자는 그의 <조선백의고 朝鮮白衣考>란 논문에서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야나기(柳宗悅) 같은 자도 백의민족의 유래를 “이 민족이 겪은 고통, 많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백의를 마치 상복(喪服)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고 있다.

 

백의를 숭상하는 습속에 대해서는 3세기에 편찬된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즉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이라든지,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이라든지,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백의는 삼한·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유습임을 알 수 있고,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것을 여러 차례 반포된 백의금지령(白衣禁止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13세기 후반 고려 충렬왕 때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년과 12년, 인조 26년, 현종 11·12·17년, 숙종 2년과 17년, 그리고 영조 때 여러 차례 거듭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똑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이같이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백의의 습속이 끈질기게 우리의 의생활을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더욱이 갓난아이에게 흰옷을 입히고 죽을 때 또한 흰옷을 입히니 한국인은 요람에서부터 입관에 이르기까지 백의로 일생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또 우리 민족의 의생활은 거듭되는 외래의상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민족고유의상인 흰색의 바지와 치마 그리고 저고리라는 기본형을 끝내 고수하여 온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색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구극(究極)의 색이요 불멸의 색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백의의 습속은 단순히 옷감(紵과 楮) 때문에 우연히 선택된 색감이라기보다도 하늘과 땅을 숭배하는 민족 고유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제사 때 흰옷을 입고 흰떡·흰술·흰밥을 쓴다는 관습이 하늘에 제사드리는 천제(天祭)의식에서 유래했듯이 백의 역시 천제에서 유래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상복까지도 천제에 유래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고,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 일본열도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백의의 습속을 저들 신사(神社)의 신관(神官) 복장으로 남겨 오늘에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부연해 두어야 할 것이다.

 

Daum
백과사전
                                         

 

흰색은 순색(純色)이라고 하여 청정·순결 또는 광명과 도의의 표상이 되어 신성한 빛을 뜻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흰색·흰옷 숭상은 뿌리깊은 것으로, 민족정신을 뜻할 만큼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5행사상(五行思想)에서 흰색이 서쪽에 해당하기 때문에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이론이 제기되었다. 고려시대인 1357년(공민왕 6) 우필흥(又必興)이 동방은 목으로 청(靑)에 해당하는데 백은 금이니 흰색 모시옷을 입는 것은 목제금(木制金)의 상(象)이라 하여 금지하게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명종 때 조식(趙植)이 흰옷은 소복(素服)이므로 금지해야 한다고 상소하여 금지했다. 〈지봉유설 芝峰類說〉에는 여러 차례 국난을 겪는 동안 흰옷을 입게 되었으나, 흰색은 상복(喪服)이라고 금지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 조선시대 금지령을 살펴보면 1398년(태조 7) 남녀의 흰옷 착용을 금지했고, 1401년(태종 1)에 다시 흰옷을 금지했다. 1425년(세종 7)에도 궁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흰옷 착용을 금지했으며, 1505년(연산군 11)에도 도성 안 여자들의 흰색 치마를 금지했다. 1738년(영조 14)에도 흰옷 착용을 엄히 금지했다. 이와 같이 여러 차례 흰옷 착용을 금지한 것은 신분구별을 뚜렷이 하고 사치를 금해 검약을 숭상하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뒤에 주로 상복으로만 흰옷을 입게 되었고, 근대 이후 의식 변화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식이나 종교적인 행사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색깔있는 옷을 입게 되어 차츰 일상생활에서 멀어졌다.

 

 

STB콜로키움17회 김정민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1부

 

https://youtu.be/q7qp3aiB8Wc

 

 

백의민족白衣民族

 

① 희다 ② 서방(西方)의 빛깔 ③ 작위 ④ 말하다 ⑤ 백작

1희다.

(무엇이)색이 눈이나 우유 빛깔과 같이 하얗다.

 

희다. <== 삶 상징<==삶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衣옷 의

① 옷 ② 싸는 것 ③ 이끼 ④ 깃털 ⑤ 살갗

1..

몸을 싸서 가리기 위하여 피륙 따위로 몸에 맞게 만들어 입는 것.

 

                         

(1)

옻나무에서 나오는 . 처음에는 무색이나 공기 닿으면 검게 변한다. 오래 저장해 변하지 않고 이나 알칼리, 강하여 칠감이나 접착제 쓴다.

 

검게 변한다,<== 죽음 상징.<==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족 [民族]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 하면서 언어 문화상 공통성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인종이나 국민 반드시 일치하는 아니다.

 

 

이와같아,

 

백의白衣 란?

 

삶과 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우리 조상님중에 선지식인분께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의민족白衣民族 이란?

 

삶과 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는것을 가리키고 있는 민족이라는,메세지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복素服 

하얗게 차려입은 . 흔히 상중() 입는다.

 

 素흴 소

1.희다.

 

 服 옥복

① 옷 ② 기다 ③ 의복 ④ 포복함 ⑤ 옷을 입다

 

 소복素服?

 

삶과 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우리 조상님중에 선지식인분께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에 종이와 붓이 흔하지 않던 시절 선지식인분이 계셨는데,자신의 지식을 말을 해줘도 알아 듣지를 못하니,자신의 지식을 전해야 하는데 전하는 방법이 없다보니 종교,문화,풍속,이름 등으로 메세지를 주고 깨닫고 살아가라고  전傳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9재齋 북방불교의 전승에서 나온 것이다.죽은 사람의 영혼이 일반적으로 칠칠일(49일) 동안 이승에 머물러 있다가 저승으로 떠난다 해서 49일에 혼을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의미에서 재를 지내는 것이다.

 

남방불교권에서는 사람이 죽자마자 바로 환생한다고 보기 때문에,비록 사람이 아닌 것으로 환생할 수도 있긴 하지만,죽은 뒤에는 어떤 의례를 거행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사람이 죽으면 묘지,납골당,봉안당등 만들것도 없고,화장하고 산천에 뿌려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야 조상님을 극락 왕생 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후손이 죽은 사람 붙잡고 있는데,극락왕생 할수 있을까요? 당신이 고추 붙잡고 있는데,다른데 갈수 없잖아요?

 

차례,제사,성묘는 타임캡슐로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미래에 잘난 너도 나처럼 죽을때가 있으니 살아있을때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우리 조상님중에 선지식인분께서 주고 있는 것으로,죽음을 보고 깨닫고 살으라는 것입니다.

 

장례,묘지,성묘,차례,제사등 모두 죽은 귀신 놀음을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http://blog.daum.net/mbbbk/7962394 제사는 타임 캡슐이다!

 

http://blog.daum.net/mbbbk/7962400 티벳의 충격적인 장례문화...천장!!

 

이와같아,

 

장례,묘지,성묘,차례,제사등 문화는 선지식인분께서 후세後世가 보고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21c 과학시대에는 장례,묘지,성묘,차례,제사등은 우리 생활에서 없어져야 하고,모두 살아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면 누구도 고노병사孤老病死에서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려면 젊어서부터 건강챙기며 사십시오.

 

20세 이상 나이 들어가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아픈곳이 나타나고 세월가면 갈수록 당신 몸은 병들어 고통뿐이 없습니다.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앉아만 계십시요(좌욕).<==이게 진짜 운동하는 방법입니다.

물에 앉는것을 실행하시면,건강을 지킬수 있습니다.

하루에 오전,오후30분이상 실행하며,매일 습관을 들이는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좋으며,1분1초라도 더 물에 앉으면 자신에게 좋은 것이나, 힘이들때는 쉬어가면서 하세요)<==이것도 못해 먹겠다고요?

 아픈것도 못 아프겠다고 해서 않 아플수 있으면 좋으련만,죽는것도 못죽겠다고 해서 않 죽으면 좋으련만,마음대로 않되지요.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니 모두에게 꼭 좋은일이 있다고 말씀 드릴수는 없으나,인연있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실행하며 살아 가십시오.


단,노력과 극복없이 기쁨은 얻을수 없습니다.

 

늙어서 병과 고통,죽음에서 벗어나려면 젊어서부터 정신 차리고 건강을 지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대단히 잘난 당신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면,물에 앉는것을 실행 않하고 살아도 됩니다.

 

그냥 살다가 죽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물에 앉는것을 실행 않하고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대단히 잘난 당신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다면,물에 앉는것을 실행 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냥 살다가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물에 앉는것을 실행 하고 살아가십시오.

 

 

잘난 너 죽어서 무덤속이나,항아리,병속 들어가는것 보다 살아있을때가 낫지 않을까요?

 

 

 저승사자 말씀!


 

※ "저작권침해"소지시 연락주시면 삭제 하겠습니다.

출처 : 물의나라
글쓴이 : 물의나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