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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조선일보의 한 귀퉁이에 실린 기사다. 58세의 어머니와 스물두 살 딸 둘이 살았다. 남편이자 아버지와는 오래전 사별했다. 서울 한곳의 상가 2층 구석 골방이 모녀의 집.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고, 딸은 취직해 돈을 보태는데도 살아가기가 버거웠다. 어머니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딸은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카드는 13개로 늘었다. 빚은 3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골방 월세도 여덟 달을 못 냈다. 어머니는 일에 지쳐 잠에 떨어진 딸을 바라보았다. '내 이 비참한 삶을 네가 반복하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어머니의 결심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목에 스카프를 감았다. 딸이 숨진 후 어머니도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밖으로 뛰어나가 죽으려는데 딸이 "엄마, 죽지 마"라고 외치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방으로 뛰어들어와 딸을 안고 흔들었지만 이미 딸은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찰에서 "죽여달라"고만 했다. 이렇게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것인지 답답했다. 이 모녀에게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먹고살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일도 무수히 많다. 이런 비극은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상처를 남긴다. 몸을 던진 사건도 왠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시골에서 혼자 상경해 밤낮 없는 아르바이트로 매달 80만원을 벌던 아이였다. 소녀의 휴대폰에는 혼자 먹고살면서 그 80만원이 어떻게 사라지는지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휴대폰에 남은 마지막 문자는 '힘드네요.' 살기가 힘든 사람들의 절망과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살다 보면 길이 있다"는 상투적인 위로가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을까 .
어느 다른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됐다. 지난 24일 휴가 중에 불의의 심장마비로 숨진 광동제약 최수부(78) 회장의 얘기다. 최 회장을 전혀 모르지만 우연히 그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람이란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그가 남긴 자서전을 구해 읽어보았다.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소년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지고 제대로 먹지 못한 다섯 살 막내가 감기 끝에 죽은 뒤였다. 초등학교 4년 중퇴.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고, 강가에서 참외를 길러 팔았다. 지쳐 잠에 떨어진 최수부가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방바닥에서 얼굴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떼려고 하니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실눈을 뜨고 보니 뭔가 시커먼 것을 사이에 두고 방바닥과 오른 뺨 전체가 붙어 있었다. 밤새 흘린 코피가 굳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물로 20~30분을 닦고서야 최수부의 얼굴은 바닥에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은 코피를 흘렸는지 세숫대야의 물이 검붉었다. 그러고서도 아침에 시장에 나가야 했다. 이때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세상 돈을 다 다룬다는 얘기만 듣고 재무부 이재국장 방으로 약을 팔러갔다가 쫓겨나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잠시 정회한 틈을 타 의원들에게 약 광고지를 돌렸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내 의원 생활 십수 년에 국회 회의실에 뭘 팔러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성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어머니는 거기서 절망을 보고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다른 아이는 굳은 코피를 뜯어내고 살기 위해 또 시장으로 나갔다. 최수부는 자서전에서 상투적인 인생 교훈을 하나도 적지 않았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했다. ' 성공은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최수부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인생의 기회는 버티고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이것이 내가 70년 이상 배운 삶의 가장 큰 깨달음이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살아남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다'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을 그냥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에게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굴복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운명에 보란 듯이 맞서 싸웠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화려한 햇살이 비치는 날이 너무 적은 것만 같다. 그러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언정 결코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최 회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나 역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이상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내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이를 악물고 세상을 버티며 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양상훈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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