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식

북한 김일성의 가계도

지와이원 2014. 2. 26. 19:00

 

派祖

金繼祥キム・ギェサン、김계상

.

김차형 (김일성의 고고고고조 할아버지)

(1699년 3월 13일 ~ 1768년 2월 25일)

.

김윽 (김일성의 고고고조 할아버지)

(1728년 3월 1일 ~ 1813년 12월 31일)

.

김민수 (김일성의 고고조 할아버지)

(1770년 2월 27일 ~ 1854년 3월 1일)

.

김송령 (김일성의 고조 할아버지)

(1810년 12월 1일 ~ 1899년 3월 12일) 父:金松齡(キム・ソンリョン、김송령)(1810年 - 1899年3月12日.

.

김응우 (김일성의 증조부)

(金膺禹, 1845년 4월 8일 ~ 1930년 2월 10일)는

구한말의병장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주석 김일성의 증조부이다.

본관은 전주이다. 1866년 7월에 대동강에 침입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침몰에 참여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가 제너럴 셔먼 호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주장 한다.

1862년 평양지역 지주의 묘지를 봐주기로 하고, 만경대 근처로 이사를 와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한다.

家系

金膺禹の一家は、全州金氏であり、祖先はもと全州に住んでいたが、

膺禹の10代前の祖先である金繼祥(キム・ギェサン、김계상)の代に、

全羅北道全州から北の咸鏡道に移住し、さらに平安南道万景台に移住したという。

 

김보현 (김일성 조부)

김보현

김보현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B%B3%B4%ED%98%84_(1871%EB%85%84)

(金輔鉉, 1871년 음력 8월 19일 ~ 1955년 양력 9월 2일)은 평안남도 출신의 농업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4대 주석 김일성의 할아버지이며,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독립운동가 김형직, 김형권의 아버지이다. 자손들의 독립운동을 후원해 주었고 일찍 부모를 여읜 주석 김일성을 양육하였다.

 

생애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만경대 산당지기인 김응우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김응우가 일찍 사망하여 소작살이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

리보익과 결혼하여 김일성의 아버지인 장남 김형직 등 3남 3녀를 낳았다.

그는 북한에서 일제 강점기에 민족적 절개를 지킨 지사이자 손자가

집권한 뒤에도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산 애국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농업 간부 재교육을 위한 김보현대학1994년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한 명칭이다.

해방이 되어 손자인 김일성 주석이 북한의 수상이 되어

그를 모시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고향에서 농업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84살에 세상을 떠났다. 만경대의 묘지에는 그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가족 관계

家系

金日成の本貫が全州[1]というのは自称[2]であり、

http://ja.wikipedia.org/wiki/%E9%87%91%E8%BC%94%E9%89%89

賎民階級で文盲であった彼の先祖についての詳細な記録があったとは考えられないため、真相は不明である。

註釈

  1. ^ 「全州金氏」ではなく、実際は「善山金氏」ではないかと言われている。
  2. ^ 全州金氏だとすれば、新羅第56代敬順王の末裔である金台瑞の子孫ということになる。「全州金氏」という説は金日成の自叙伝『世紀とともに』に記載されているが、史実としては金膺禹以前の系譜は信用出来ないものである。また朝鮮日報2000年10月8日号の記事によると、「金正日は、2000年9月、韓国のマスコミの社長との昼食会で、『南に行くことが出来たら、全羅北道完州郡九耳面の母岳山(モアクサン、모악산)にある台瑞公の始祖廟を参拝したい』と発言した」という。
  3. ^ 1992年、金日成著書《與世紀同行(金日成回憶録)》云「我一家,是在我的先祖金繼祥那一代,為了生存,從全羅北道全州遷到北方來的。我們家在萬景台安家落戶,是在曾祖父(金膺禹)世代。曾祖父出生在平壤的中城裏,自幼務農。因家境貧窮,19世紀60年代,跟住在平壤的地主李平澤說好,替他守墓,於是搬到了萬景台,住進了那家地主守墓房。(中略)我們一家祖祖輩輩都是佃農,家境十分貧寒。我的祖輩三代都是獨生子,到我祖父(金輔鉉)一代,生下了六個兄妹,人口增到十來個人。祖父為了讓子孫能夠糊口,從沒有歇過手。在別人都熟睡的淩晨,他就到村裏東奔西走地撿糞;夜裏則坐在油燈下搓草繩,打草鞋,編草席。祖母(李寶益)也是白天黑夜地紡線。母親(康盤石)帶著叔母(玄養信)和姑母(金九日女、金亨實、金亨福)白天到地裏除草,夜裏織布。因為家裏太窮,大叔父(金亨祿)九歲時只學了一點《千字文》,從沒有上過學,自小就幫助祖父種田

参考文献

김일성 가계

고조부 : 김차형 (1699년 3월 13일 ~ 1768년 2월 25일)

고조모 : 나민? (1703년 12월 22일 ~ 1744년 6월 30일)

 

증조부 : 김윽 (1728년 3월 1일 ~ 1813년 12월 31일)

증조모 : 도민숙 (1735년 1월 2일 ~ 1811년 2월 10일)

 

조부 : 김민수 (1770년 2월 27일 ~ 1854년 3월 1일)

조모 : 고송희 (1772년 3월 3일 ~ 1832년 7월 9일)

 

아버지 : 김송령 김일성의 고조 할아버지(1810년 12월 1일 ~ 1899년 3월 12일)

            父:金松齡(キム・ソンリョン、김송령)(1810年 - 1899年3月12日.

어머니 : 나현직 (1811년 3월 4일 ~ 1897년 1월 23일) 母:羅氏(라씨)(1811年 - 1897年1月23日)

 

동생 : 김의국(1854년 3월 2일 ~ 1947년 2월 5일)

동생 : 김종수 (1855년 4월 3일 ~ 1943년 1월)

동생 : 김인석 (1863년 3월 22일 ~ 1952년 2월 3일)

 

본인:김응우1848年旧暦6月17日 - 1878年旧暦10月4日)

         本人:金膺禹(キム・ウンウ、김응우)(1848年旧暦6月17日 - 1878年旧暦10月4日)

처 : 이씨(李氏, ? ~ ?) 妻:李氏?(리씨?)

 

아들 : 김보현 子:金輔鉉(キム・ボヒョン、김보현)(1871年旧暦8月19日 - 1955年新暦9月2日)

손자 : 김형직 孫: 金亨稷(キム・ヒョンジク、김형직)(1894年7月10日 - 1926年6月5日

 

증손 : 김일성 曾孫:金日成(キム・イルソン、김일성)(1912年4月15日 - 1994年7月8日

고손 : 김정일 玄孫:金正日(キム・ジョンイル、김정일)(1941年2月16日 - 2011年12月17日

来孫:金正男(キム・ジョンナム、1971年5月10日 - )

昆孫:金韓松(キム・ハンソル、1994年 - )

来孫:金正哲(キム・ジョンチョル、1980年9月25日 - )

来孫:金正恩(キム・ジョンウン、김정은)(1983年1月8日 - )

叔父:金柏齡(キム・ペクリョン、김백암

従弟:(キム・ウングク、김응국)(1854年3月2日 - 1947年2月5日

従妹:(キム・ジョンス、김종수)(1855年4月3日 - 1943年1月)

従妹:(キム・インソク、김인석)(1863年3月22日 - 1952年2月3日

 

고손 : 김경희

증손 : 김영주

손자 : 김형록

손자 : 김형권

 

가족과 친척

김일성은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D%BC%EC%84%B1

김정숙에게서 정일, 만일, 경희의 2남 1녀를,

김성애에게서는 평일, 영일, 경숙, 경진의 2남 2녀를 각각 두었다.

그 밖에 주석궁의 안마사 또는 간호사 출신인 성명불상의 제갈씨에게서 서자 김현을 두었다.

 

 

 
 
 
 
 
 
김형직
金亨稷
1894 - 1926
 
 
 
 
 
 
 
 
 
강반석
康盤石
1892 - 1932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성애
金聖愛
1928 - ?
 
 
 
 
 
 
 
 
 
 
제갈○○
諸葛氏
 ? - ?
 
 
 
 
 
 
 
 
 
 
 
 
 
 
 
 
 
 
 
 
 
 
 
 
 
 
 
 
 
 
 
 
 
 
 
 
 
 
 
 
 
 
 
 
 
 
 
 
 
 
 
 
 
 
 
 
 
 
 
 
 
 
 
 
 
 
 
 
 
 
 
 
김정일
金正日
1941/42 - 2011
 
김만일
金萬日
1944 - 1947
 
김경희
金敬姬
1946 -
 
김경숙
金敬淑
1951 -
 
김경진
金經進
1952 -
 
김평일
金平日
1954 -
 
김영일
金英日
1955 - 2000
 
김현
金現
1971 - 2001
 

 

 

김정일 (김일성의 아들)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A0%95%EC%9D%BC

가계

 
 
 
 
 
 
김형직
金亨稷
1894 - 1926
 
 
 
 
 
 
 
 
 
강반석
康盤石
1892 - 1932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성애
金聖愛
1928 - ?
 
 
 
 
 
 
 
 
 
 
제갈○○
諸葛氏
 ? - ?
 
 
 
 
 
 
 
 
 
 
 
 
 
 
 
 
 
 
 
 
 
 
 
 
 
 
 
 
 
 
 
 
 
 
 
 
 
 
 
 
 
 
 
 
 
 
 
 
 
 
 
 
 
 
 
 
 
 
 
 
 
 
 
 
 
 
 
 
 
 
 
 
김정일
金正日
1941/42 - 2011
 
김만일
金萬日
1944 - 1947
 
김경희
金敬姬
1946 -
 
김경숙
金敬淑
1951 -
 
김경진
金經進
1952 -
 
김평일
金平日
1954 -
 
김영일
金英日
1955 - 2000
 
김현
金現
1971 - 2001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홍일천
洪一茜
1942 -
 
 
성혜림
成蕙琳
1937 - 2002
 
 
김영숙
金英淑
1947 -
 
 
 
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고영희
高英姬
1952 - 2004
 
김옥
金玉
1964 -
 
 
 
 
 
 
 
 
 
 
 
 
 
 
 
 
 
 
 
 
 
 
 
 
 
 
 
 
 
 
 
 
 
 
 
 
 
 
 
 
 
 
 
 
 
 
 
 
 
 
 
 
 
 
 
 
 
 
 
 
김혜경
金惠敬
1968 -
 
김정남
金正男
1971 -
 
김설송
金雪松
1973 -
 
김춘송
金春松
1975 -
 
김정철
金正哲
1981 -
 
김정은
金正恩
1984 -
 
김여정
金汝貞
1987 -
 
  • 손자녀(김정남의 자녀들)
    • 손자 김한솔
    • 손자 김이순
    • 손녀 김솔희
    • 손자 김금솔

.

김정은 (김일성의 손자)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A0%95%EC%9D%80

 

가계도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홍일천
洪一茜
1942 -
 
 
성혜림
成蕙琳
1937 - 2002
 
 
김영숙
金英淑
1947 -
 
 
 
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고영희
高英姬
1952 - 2004
 
김옥
金玉
1964 -
 
 
 
 
 
 
 
 
 
 
 
 
 
 
 
 
 
 
 
 
 
 
 
 
 
 
 
 
 
 
 
 
 
 
 
 
 
 
 
 
 
 
 
 
 
 
 
 
 
 
 
 
 
 
 
 
 
 
 
 
김혜경
金惠敬
1968 -
 
김정남
金正男
1971 -
 
김설송
金雪松
1973 -
 
김춘송
金春松
1975 -
 
김정철
金正哲
1981 -
 
김정은
金正恩
1984 -
 
김여정
金汝貞
1987 -
 

..

 

 

 

 

 

  

김정남 (김정일의 큰아들)

 

김정남
출생 1971년 5월 10일(1971-05-10) (42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력 제네바 대학교 정치학 학사
직업 군인, 정치인
부모 김정일(부), 성혜림(모)

김정남(金正男, 1971년 5월 10일 ~ )은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A0%95%EB%82%A8_(1971%EB%85%8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국방위원장인 김정일(金正日)의 아들이다.

김정일의 둘째 아내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김정일의 장남이다.

 

생애

김정남은 해외 유학으로 식견을 넓혔으며,

제네바 대학교를 나와 영어프랑스어도 능통하였고, 개혁개방에 관심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 일본도미니카 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밀입국했는데,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놀고 싶었다고 변명했지만 그 원래 목적은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그가 상당기간 조선컴퓨터위원회를 맡았고 IT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의 IT 산업을 보기 위해 밀입국했다는 설이 제기되었었다.

김정남은 중국이 자신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부인했다.[1]

김일성은 김정남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설도 있다.[2]

아키하바라에 출몰하고, 마카오 등지를 쏘다니는 등 순 노는 모습을 보여 흔히 알려지게 된 김정남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과는 달리 장남인 김정남은 김정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3].

"여자만 밝히는 방탕아"라는 이미지 역시 상당부분 과장됐다고 전현직 대북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4].

FNN파리의 우수 병원에 김정남이 직접 방문한 것을 볼 때 김정일의

건강 관리에 대해 장남인 김정남이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정남의 병원 방문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김정남이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면담을 한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인

뇌신경외과 전문의가 유네스코 주재 북한 대표부 소속 차량을 타고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5].

김정남은 아버지인 김정일의 직접 지시를 받는 무기 수출 총책임자라고 알려졌다.

스커드 또는 SA-16 미사일 등의 무기를 매각하고 받은 돈을 해외에서 이자가 비싼 은행

예금해 놓은 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버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보도되었다[6].

김정남은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의 책임자가 되었[7]으나, 후계자 순위에서 밀려났으며,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에 의해 암살당할 위기에 몰린 이후에는 계속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2012년에는 러시아의 한 주간지에 따르면 김정일 사후에 이복동생 김정은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부터 돈을 받지못해서 호텔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김정남이 묵었던 그랜드 라파 호텔 측에 따르면 그런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8]

 

후계자설

권력 구도

2009년 이후,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이미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알려졌다[9].

강선제강소로 좌천된 장성택을 결정적으로 구해준 사람이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이다.

이후 장성택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남을 옹립하고 나섰다[10].

그러나 과거에는 김정남의 후계 옹립을 도왔지만 지금은 그 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11].

장성택 부장은 각별한 관계인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버리고 삼남인

김정은을 지지하는 대신 권력의 핵심 요직에 장 부장의 사람들을 임명하였다[12].

원래 김정남은 장성택이, 김정은김옥이 지지하고 있었다.

김옥은 현재 김정일의 넷째 아내로 2008년 딸을 출산했고,

김정은의 모친이자 셋째 아내인 고영희가 발탁해 오늘에 이른 인물이다.

2004년 고영희가 죽기 직전에 김정은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사위이며, 김정일의 여동생의 남편, 매제이다.

2009년 현재,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인물도 아들들을

제외하면 김정일의 주치의와 김옥 그리고 장성택 세 사람 정도이다[13].

2009년 4월 9일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을 4명 더 늘렸다.

장성택은 대한민국의 대북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신임 국방위원으로 임명되었다[14].

 

김정남 후계자설

2007년 8월 28일,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러시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김정남의 복귀 소식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첫째 아들인 그가 다른 형제들을 권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보도했다[15].

김정남은 이모 성혜랑1996년 미국 망명으로 그 위상이 크게 위협받았었다[1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는 유교적인 장자 상속사회라는 사회구조와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정남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17].

황장엽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 비서는 김 위원장 사후 장남인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장성택이 그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18].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만약 내가 후계자라면

나와 마카오에서 만날 수 있었겠느냐”라며 “나는 그(김정일)의 아들일 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입장(을 밝힐 위치)은 아니다”고 말했다[19].

김정남은 2009년 현재, 서방 언론과 접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부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절대권력자인 아버지도 부러워할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지위에 있다[20].

 

김정은 후계자 비평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3남 김정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21].

그러나, 대북전문가인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전 국회의원)는 "나이 어린 그가 후계자로 지명됐다는 주장은

후계와 관련한 외부 세계의 전망을 흐리게 하고자 북한 내부에서 흘러나온 역정보일 가능성 크다"고 주장하였다[17].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되어 후계자로서 자격이 적합한가에 대해,

중국정부에서는 김정은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장남인 김정남을 더 선호를 하였다[22].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 박사는 "올해 25세로 직접 국정을 운영하기에는

너무 연소하고 경험과 경력도 짧은 정은이 김 위원장과 같은 권력을 행사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걸린다"면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이 당장 2∼3년 안에 사망할 경우,

북한의 최고 통치자로서 김정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말했다[12].

한편 김정남은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비판하였다.[23] 이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분석한다.[24]

 

가족

확인된 자녀는 3남 1녀이다. 이 중 정식 아내는 평양 초대소 복무원 출신 신정희이다.[25]

그리고 아내 신정희, 동거녀 이혜경의 정확한 연령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인 서영라와도 동거 중이었다.

 

http://ja.wikipedia.org/wiki/%E9%87%91%E6%AD%A3%E7%94%B7

その

  • 2002年12月には、パリ郊外のディズニーランドを訪れるためにフランス入国を申請したがフランス政府に拒否された、とフランス紙に報じられた。
  • 2004年9月25日には、北京国際空港に現れ、居合わせた報道陣の問いに金正男本人だと認めた。渡航理由は不明だが、付き人もなく一人で北京市内のホテルに滞在したという。また同年12月3日、本人と思われる人物が複数の日本の新聞社に年末年始の挨拶の電子メールを送った事が報じられた。これが実際に本人からのものであるならば、先述の9月の北京国際空港での取材時に渡された名刺に書かれたメールアドレスを見て送ったのだろうと推測されている。
    • このメール騒動について、北朝鮮問題に詳しい恵谷治は偽者説を、コリアレポート辺真一は本物か周辺によるメール送信説を述べた。評論家の河信基は「後継者から外され、焦っている」と語る。北京を主に活動しているようである。
  • 異母弟の金正恩とは一度も会ったことがないと発言している[21]
  • 尚、中央日報によると、金正男は金正恩によって暗殺されそうになったとする記事がある[22]
  • 2011年9月、正男の長男であるキム・ハンソルボスニア・ヘルツェゴビナモスタルにあるインターナショナル・スクールに入学し[23]フェイスブックに顔写真が公開されていると報道された[24]
  • 2011年10月、フェイスブックのアカウントを取得したと報道された[25]
  • 2012年1月20日、文藝春秋より「父・金正日と私:金正男独占告白」五味洋治/著 が出版された。2004年に名刺を交換した東京新聞の五味編集委員との150通にわたるメールのやりとりと、7時間のロングインタビューによって構成されている。この中で金正男は北朝鮮の三世代世襲制を批判し、また金正日も生前これを否定したことを語っている。この本の出版時期については金正男は、金正日の喪が明けたあとに考えたいとしていたが、五味によって半ば強行されている。
 
金膺禹
 
 
 
 
 
 
 
 
 
 
 
 
 
 
 
 
 
 
 
 
 
 
 
 
 
 
 
 
 
 
 
 
 
 
 
 
 
金輔鉉
 
李宝益
 
 
 
 
 
 
 
 
 
 
 
 
 
 
 
 
 
 
 
 
 
 
 
 
 
 
 
 
 
 
 
 
 
 
 
 
 
 
 
 
 
 
金亨稷
 
康盤石
 
 
 
 
 
 
 
 
 
 
 
 
 
 
 
 
 
 
 
 
 
 
 
 
 
 
 
 
 
 
 
 
 
 
 
 
 
 
 
 
 
 
 
 
 
 
 
 
 
 
 
 
 
 
 
 
金正淑
 
金日成
 
金聖愛
 
金哲柱
 
金英柱
 
 
 
 
 
 
 
 
 
 
 
 
 
 
 
 
 
 
 
 
 
 
 
 
 
 
 
 
 
 
 
 
 
 
 
 
 
 
 
 
 
 
 
 
 
 
 
 
 
 
 
 
 
 
 
 
 
 
 
 
 
 
 
 
 
 
 
 
 
 
 
 
 
 
 
 
 
 
 
 
 
 
 
 
 
 
 
 
 
 
 
 
 
 
 
 
 
 
 
 
 
 
 
 
 
 
 
 
 
 
 
 
 
 
 
 
 
 
 
 
 
 
 
 
 
 
 
 
 
 
 
 
 
 
 
 
 
 
 
 
 
 
 
 
 
 
 
 
 
 
 
 
 
 
 
 
 
 
 
 
 
 
 
 
 
 
 
 
 
 
 
 
 
 
 
 
 
 
 
 
 
成蕙琳
 
 
金英淑
 
金正日
 
高英姫
 
金玉
 
金万一
 
金敬姫
 
張成沢
 
金平一
 
 
 
 
 
 
 
 
 
 
 
 
 
 
 
 
 
 
 
 
 
 
 
 
 
 
 
 
 
 
 
 
 
 
 
 
 
 
 
 
 
 
 
金正男
 
金雪松
 
金正哲
 
金正恩
 
金ヨジョン
 
 
 
 
 
 
 
 
 
 
 
 
金韓松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홍일천
洪一茜
1942 -
 
 
성혜림
成蕙琳
1937 - 2002
 
 
김영숙
金英淑
1947 -
 
 
 
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고영희
高英姬
1952 - 2004
 
김옥
金玉
1964 -
 
 
 
 
 
 
 
 
 
 
 
 
 
 
 
 
 
 
 
 
 
 
 
 
 
 
 
 
 
 
 
 
 
 
 
 
 
 
 
 
 
 
 
 
 
 
 
 
 
 
 
 
 
 
 
 
 
 
 
 
김혜경
金惠敬
1968 -
 
김정남
金正男
1971 -
 
김설송
金雪松
1973 -
 
김춘송
金春松
1975 -
 
김정철
金正哲
1981 -
 
김정은
金正恩
1984 -
 
김여정
金汝貞
1987 -
 

주석

  1. 이동 김정남, "중국이 나를 후계자로 원한다? 사실 아니다"
  2. 이동 北 김일성, 김정은 손자로 인정안했다” 경향신문 2012년 2월 15일
  3. 이동 조, 숭호, “다음 후계자는 김정남? 김정운?”, 《내일신문》, 2007년 5월 22일 작성.
  4. 이동 황, 일도. 北 김정남은 ‘노아웃’. 《신동아》.
  5. 이동 서, 유정, “"北 김정남, 김정일 치료 위해 佛의사 직접 모셔와"…日 후지TV”, 《제주포커스》, 2008년 10월 27일 작성.
  6. 이동 정, 승욱, “[단독"김정남은 북 무기판매 책임자"]”, 《세계일보》, 2007년 2월 13일 작성.
  7. 이동 김정남 VS 고영희 목숨 건 후계자 전쟁. 《위클리 경향》.
  8. 이동 http://www.voanews.com/korean/news/makao_kimjeongnam-140295543.html
  9. 이동 최, 재원, “김정운 올 10월 후계자 공식화”, 《헤럴드경제》, 2009년 5월 14일 작성.
  10. 이동 장, 성민, “장성택과 포스트 김정일 (3)”, 《중앙일보》, 2009년 4월 13일 작성.
  11. 이동 양, 정아, “김정남, 국제사회 너무 잘알아 후계자서 탈락”, 《데일리NK》, 2009년 5월 17일 작성.
  12. 이동: 미 전문가, 김정일 셋째 아들 권력 승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조선일보》, 2009년 5월 13일 작성.
  13. 이동 김, 경탁, “김정일 '권력대행자' 장성택, 킹메이커?”, 《브레이크뉴스》, 2009년 2월 16일 작성.
  14. 이동 신, 보영, “<안보리 대북제재 본격화>北, 국방위원 12명 사진 첫 공개… 왜?
  15. 《문화일보》, 2009년 4월 17일 작성. 2009년 6월 1일 확인.
  16. 이동 남, 현호, “"北 김정남 복귀 사실이면 권력 암투 생길 수도"<러 언론>”, 《연합뉴스》, 2007년 8월 28일 작성.
  17. 이동 김, 필재, ““김정일 셋째 아들, 치명적 사고로 치료 중””, 《프리존뉴스》, 2008년 9월 11일 작성.
  18. 이동: 김, 경탁, “"北 3남 김정운 후계자 지명설은 역정보"”, 《브레이크뉴스》, 2009년 2월 16일 작성.
  19. 이동 더 타임스 “장성택이 북한 실질적으로 통치””, 《국민일보》, 2008년 11월 9일 작성.
  20. 이동 김, 형구, “김정남 "내가 후계자라면 만날수 있었겠느냐"”, 《세계일보》, 2009년 4월 9일 작성.
  21. 이동 최, 선영, “北 유일 '자유인' 김정남..'김삿갓'풍”, 《연합뉴스》, 2009년 4월 9일 작성.
  22. 이동 임, 주영, “대북 소식지들 "김정운후계설 확산" 일치”, 《연합뉴스》, 2009년 5월 31일 작성.
  23. 이동 방, 승배, “김정일 총애 3남 김정운, 국방위 지도원 임명說”, 《문화일보》, 2009년 4월 27일 작성.
  24. 이동 최철 기자. “김정남 "북한 3대 세습 반대한다"”, 《노컷뉴스》, 2010년 10월 12일 작성. 2010년 10월 15일 확인.
  25. 이동 백나리 기자. “김정남 세습반대는 `생존 제스처'”, 《연합뉴스》, 2010년 10월 12일 작성. 2010년 10월 15일 확인. 이동 등에는 온통 용 문신, 연 생활비 50만 달러 중앙일보

바깥 고

<noscript></no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