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식

[스크랩] 오후여담/ 아! 황장엽

지와이원 2011. 4. 2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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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아! 황장엽
이용식 논설위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만나자마자 금방 ‘타고난 학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1997년 74세의 나이에, 북한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족과 수많은 지인들의 희생을 예상하면서도 어떻게 한국 망명을 결행할 수 있었을까.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1998년 5월19일 국내외 언론사상 처음으로 그를 심층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문화일보 취재팀과의 인터뷰는 서울시내의 한 안가(安家)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 계속됐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인지 개인적 고통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에게 가해질 비극보다는 김정일 체제를 타도하고, 독재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전체 북한 동포를 구출해야겠다는 일념만은 분명했다. 그는 ‘김정일 체제 붕괴 →10년 동안 북한내 대체세력에 의한 정권 운영→정치·경제적 격차 줄인 뒤 통일’이라는 구체적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잠재적 대체세력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구체적 명단을 밝히진 않았지만 분명히 있다고 했으며, 취재팀도 진정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한국 정부와 협력해 차근차근 해나가면 10억~20억달러의 비용으로 머지않은 시간에 큰 혼란 없이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김영삼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으로, 국가안전기획부가 국가정보원으로 바뀌면서 그의 구상과는 정반대인 햇볕정책이 등장했고, 그의 활동에도 제약이 가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까지의 10년 동안 황 전 비서는 사실상의 출국금지, 또는 연금 상태였다. 이 기간 중 북쪽에서도 황 전 비서가 주목했던 세력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그와 가까웠던 2000명 이상이 숙청됐다고 한다. 노(老)망명객에게 이 10년 세월은 자신에게 남아 있던 생(生)의 대부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의 싹이 뿌리째 뽑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절망의 기간이었다.

75세에서 85세까지의 금쪽같은 시간을 그렇게 보낸 황 전 비서의 좌절과 울분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활동의 길이 열리자 과거를 원망하지 않고 정신력 하나로 촌각을 아끼며 국내외를 뛰었다. 엄청난 개인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생명이 허락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의 통찰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이 시대 한국민 모두가 부끄러워진다.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명복을 빈다.

 

출처 : 한국 네티즌본부
글쓴이 : 최 신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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