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사진

[스크랩] Adam씨가 1950년대에 촬영한 칼러사진 우리나라

지와이원 2011. 5. 3. 09:16

 

 

♣ Adam씨가 1950년대에 촬영한 칼러사진 ♣

 



 
소시장의 풍경입니다....
Adam 아담에게 인상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다.
 과연 장 마당 가득 찬 사람들 모두 흰 옷이군요




Adam 아담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중 하나인 한국 노인분들의 담배피는 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Adam 아담 할아버지의 집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입니다.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입니다.




시장의 한켠....




추수를 하는 들판의 모습입니다....
전쟁때문이었는지 산에 나무가 없이 벌거벗은 모습이군요....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 아담 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래 보이는 세 사진은 피난민촌의 사진 입니다.
붙어있는 판자집들의 모습과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재의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의 모습.
 붙어있는 판자집들,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재 후의 모습.




줄을서서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Adam 아담의 기억하나는 그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을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공공 화덕에서 분유를 더운물에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사실 지금은 70대 초반은 되었을 우리들의 모습들 입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한푸대의 Charcoal(숯?)을 이고 가는 모습




현재의 Adam 아담과 아내 Alice 앨리스 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갔을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간 곳이라 합니다.
  이후 몇나라를 더 돌아 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수업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몇장의 지금의 한국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더니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거라며 웃어주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만,
블로그 한페이지에 올릴수 있느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장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 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 입니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학생인 저로서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죠,
 물론 50년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요....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써 있네요...
Jeep 찝 차를 타고 가다가 전복 사고를 당한후 대구의 한 군병원에서 치료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했을때 눈빛이 강렬하군요...



원조물품에 대한 환영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된것 같은 사진입니다...
전쟁후의 모습들인데도 밝은 표정들입니다...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고아가 아닌듯한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군요....^^;





Outdoor Meeting 야회 집회라고 써있는 사진입니다...
Adam 아담 의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한 Adam 아담과 아이들의 사진 입니다...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가 이 대부분의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 입니다.
기종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Adam 아담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좀 사는집 자제분들 같군요..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피난민촌의 우유를 마시는 또다른 사진이군요....
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 집니다...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입니다...
신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친 것 없는 벌거벗은 아이.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그당시 보기 드물었을거 같은 직업여성이군요.....
교통정리 아가씨......멋지네요...^^;




Adam의 사진중 유일한 흑백사진인 김치독들의 사진입니다...
공동으로 사용한 장독대 같은데...
그 당시에는 남의 것 슬적 하는 일은 없었는지 궁금해 지는군요...




돼지팔러 장터로가는 한 아저씨의 사진입니다...




사진속의 아가씨는 Louis Khans 루이스 칸스 라고 하네요....
 서양 자동차와 서양 아가씨의 모습에 동네아저씨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좀 민망한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네요....




대구에 있는 한 유치원 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군요.... 그
래도 저기 계신분들은 그당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의 자제들이겠군요..




마을에 있는 공동 화로에서 분유를 데우고 있는 사진 입니다...




놀이터 사진 입니다......




소시장에서 소의 상태를 보시는 아저씨의 미소가 ...... 좋아보입니다...




소시장에서 만난 큰 모자 ( 삿갓)을 쓴 아저씨가 Adam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소시장 사진의 담배대를 파는 상인입니다...




유치원 사진이라고 써 있네요....




분유를 데우고 있는 모습...




피난민촌에서 분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




피난민촌의 전체풍경...




분유 배급중입니다....




이 사진에는 부산이라고 써 있네요....
어딘지는...




정확히 상표는 모르겠지만 빈 맥주켄을 사용하여 만든 지붕입니다...




전쟁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군용트럭을 이용해 구호 물품을 많이 날랐다고 합니다.
60트럭과 디자인은 같은데...
저도 군대시절 운전병이라 60몰았던 기억이...(제3야수교출신 ㅡㅡ;)




대공용 기관총옆에서... 자세잡고 있는 군인 아저씨...^^




장터로 가는 길일까요? 흰 옷의 행열




5일장의 한 풍경입니다.




Adam에게는 우리나라의 지게가 무척 인상깊었나 봅니다....




갓에 도포를 두른 할아버지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어머니...




구호물품 중 옷을 받기위해 모여있는 모습입니다.




평온해 보이는 농가의 풍경....




배추밭에서...




모내기를 하는건지 모종을 관리하고 있는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1954 대구에서 2007 Galveston 으로..
 KOREA 2007/02/09 17:29 참 정신없던 지난 몇일 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던 한적한 제 블로그를 들어간 3일전
믿을수 없는 방문횟수에 네이버에 오류가 생겼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제 블로그가 올라간 것을 알게 되었고.....
첫날 2500명 이상의 사람들....
둘째날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 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낄수 있었던 말못할 감정을 어설픈 제 블로그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입니다. 수많은 방문과 댓글...
다행이 악플하나 없는 댓글과 Adam선생님에 대한 감사 인사,
사진을 올린 저에 대한 격려로 아내와 저는 많이 흐믓해 했습니다.
 그 와중 대구의 매일신문과 대구KBS에서 연락이 왔고...
먼저 저에게 연락을 하신 매일신문의 사진부 안기자님에게
사진과 내용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참 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근대사 사진, 더군다나 컬러인 사진...
맘 같아서는 1954년 이후 한국을 잘 모르시는 Adam선생님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었으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직 학생 신분인 저의 입장이......ㅡㅡ;
한국사람의 방문이 많지 않은 이곳 Galveston에서 기회가 있으실 때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고,
 한국의 발전을 보고 듣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할수 있었던건 몇장의 최근 한국 사진과 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짧은 홍보 영상물을 DVD에 녹화해 댁에서 보여드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매일신문사에서 온 감사편지를 프린트해서 보여드렸습니다.




이 공돌이가 리포터흉내를 내며 인터뷰 하는 사진 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서재에서 보여드리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아불싸...모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한페이지 보는데 10분 이상....ㅡㅡ;




서재의 한 벽면엔 이렇게 방문한 나라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30여 개국을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주로 1953부터 Galveston에 온 1967년 까지 전 세계를 다녀보신듯 합니다.




한국사진중 Adam선생님이 가장 좋아 하는 사진입니다.
어르신들이 쓴 갓이 말꼬리 (말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날 인터뷰를 같이한 동네 한인들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다시한번 Adam 아담과 Alice 앨리스에게 감사 드립니다.

 

 

 

 

5.이름을 밝힌 치과의사의 글입니다

 
 


나는 김현희 담당 치과의사였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본인은 당시 안기부의 요청으로 김현희의 치과 진료를

 김대중이 집권하기 전까지 담당한 바가 있다.
당시 안기부 고(高)모 수사관을 비롯한 2~3명의 경호원이 


여의도에 있는 본인의 병원에서 함께 진료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었고,  

그래서 김현희 치과 진료는 철저한 보안 속에 몇 년간 

이루어졌었다. 
김현희를 처음 진료하는 날! 


저렇게 아름답고 고운 처녀가 KAL기를 폭파하다니

참으로 ‘공산주의 이념’은 무섭구나 하는 전율-

 
온통 그 느낌뿐이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왜 하필이면 ‘여의도’에 있는 나의 치과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과거 대통령 주치의로서,  


‘보안성’이 강한 전력을 고려하여

김현희에게 대한민국의 실상을 교육시켜 주기 위해 

외부 진료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나중에 들었던 적이 있다. 

 김현희를 처음 본 순간 새하얀 피부에 


그러나 억세고 강인한 북한 말투의 끝자락에서 

그가 ‘무서운 특수 교육’을 받았음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김현희가,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와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라는 책을 몇 권씩 저술할 때마다 본인에게 손수 친필로 

새해맞이 카드나 책 첫 장에 ‘감사의 글을 써 보냈었던 


인간미 있는 김현희였다.
가끔 김현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좌파 정권하에서 참으로 고초를 많이 겪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는 저 무시무시한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 


압박 속에서도 김현희를 잘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기도어린 바람을 자주 하곤 했었다. 
진료가 끝나면 한 20-30분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주 가벼운 담소를 수사관과 김현희와 함께 하곤 했었는데, 


(물론 기념사진도 가끔은 찍었다.) 
어느 날 진료가 끝난 후,  


나는 김현희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진 기억이 새롭다.

“김현희씨! 맨몸으로 남자 몇 명 정도 해치울 수 있소?”

 
하고 웃으며 묻자,  김현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즉답하기를

“두 명 정도는 자신이 있어요”라고 하는 


그의 다부진 모습에서,  

진료할 때마다 그를 보면서 느꼈던 강인한 그의 체형이 

숱한 무술과 이념 훈련으로 단련되어 있었음을 


새삼 느끼곤 했었다.
김현희를 안기부에서 민간 병원인 여의도까지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바깥 세상에 적응 훈련을 시키기 위한 


목적의 일환이었음은 물론이다. 

진료가 끝난 어떤 날은 경호원이 


‘오늘은 신세계 백화점을 구경시켰다’는 전언을 듣고, 

‘신세계 백화점에 가보니 어땠었냐’고 내가 묻자 


‘굉장히 복잡하고 물건들이 많아 무척 재미있었어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김현희 소식은 갑자기 감감해졌고 다만 당시 그를 수행했던 


어떤 수사관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행복하고 무사하게 잘 살기를 


간곡히 기원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씨가 ‘조작’된 사람이라는

일부 매스컴의 보도가 의도적으로 쉴새없이 나돌기 시작했다. 


과거사 위원회가 조사한다는 등등… 


친북좌파들이 김현희를 놓고 압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디어 좌파 정권이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구나’ 하고 


생각 해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김현희가 조작되었다는 그러한 소리를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틈만나면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이 결코 조작이 아니라 

무서운 진실의 사실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고 하고 


열변을 토하며 핏발을 세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친북좌파정권은 KAL폭파 주범인 김현희를 가짜로 둔갑시켜,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 김정일에게 충성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땅에 붉은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려했던 것이 

친북좌익들의 목표이었음은 당연하다.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의 승리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친북좌파의 실상을 뒤늦게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완전히 왜곡한 교과서를,  

지난 자파정권 10년 동안 우리의 순진한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교육시켰던 못된 전교조와 친북좌파들이 


그 무슨 못된 짓인들 못했겠는가? 


‘나는 가짜 KAL기 폭파범이예요,  다 가짜에요’ 라는 

김현희의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그 얼마나 김현희를 죽음에 이르도록 

괴롭혔을까 생각해보니 새삼 분노의 해일이 밀려온다. 
지금까지 그토록 고통을 받으면서 잘 참아온 ‘김현희’씨와 


그의 부군인 당시 그 경호원의 행복을 새삼스럽게 빌어보는 

이 마음 속에는 그래도 지금 국민들이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를 선택 했었기에 가능한 


자유의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그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인가? 
‘무전기는 어떻게 만드냐’고 내가 물어보자, 
 
김현희는 “조그만 트랜지스터 하나만 있으면 5분이면 


무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듣고 


한참 놀라워한 적이 새삼스럽게 귓전을 두드린다. 
그 억센 북한 사투리와 그의 연약한 듯 보이면서 

그러나 그의 건강한 체구에서, 


그가 오랜 세월동안 단련된 북한 특수 요원이었음을 

처음 김현희를 보는 순간에 느낄 수 있었는데도, 

좌파정권은 10년 동안이나 김현희로부터 

가짜 자백을 받아내어 역사를 왜곡함으로서 

김정일 정권에 충성하려 했던 

반역적인 친북좌익들의 몹쓸 행태를 계속했다. 

어떻게 김현희를 압박한 친북 좌익들을 

처벌하지 않고서 그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행한 범죄 중에 

가장 큰 죄악은 ‘우리의 역사’를 180도 왜곡하여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북한 김정일 정권의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바로 그 악랄한 


점이라고 확신한다. 
차제에 역사 왜곡을 담당했던 친북 좌익들의 집대성인 

인권 위원회와 과거사 위원회에 몸담았던 

악질 친북좌익 관련된 자들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공개조사를 실시하여 반역 행위를 백일하에 노출시켜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나는 김현희가 자유 대한민국에 평화롭게 살아남아 있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간 친북좌파들로부터 10년 동안이나 갖은 핍박과 

정신적 고문을 받으며 꿋꿋하게 자유의 신념을 지켜온 

김현희씨 내외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양영태(전 서울대 초빙교수·치의학 박사)  

 
6.[변태 병원?]
 
 
 
 
7.[대단한 자신감]
 
 
 
 
 
8..[상부상조]

 
 
 
9.[택배 왔읍니다....어짤가요?]
 
 
 
10.예 지금 갑니다..
 
 
 
 
11.[자식을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12.[시간 차이]
 
 
13.[차렷]
 

 14.신비로운 자연의 영상       
 
 
(앉어서 카나다의 자연을 구경합니다)
THE REVELATION OF DAWN
THE REVELATION OF DAWN
 

THE SUN FORTRESS

THE SUN FORTRESS

 
Mist Mountain Colors
Mist Mountain Colors
 

DREAMSCAPE
DREAMSCAPE
 

TOWARDS HEAVEN
TOWARDS HEAVEN


TEMPLE OF THE CLOUDS

TEMPLE OF THE CLOUDS
 

Desert Light

Desert Light
 

Sandstone Falls

Sandstone Falls
 

Paradise Garden

Paradise Garden
 

Blue Night

Blue Night
 

Winter Temple

Winter Temple
 

Castle River

Castle River
 

Owens Valley,  Dawn

Owens Valley, Dawn
 

Awakening

Awakening

Lupine Meadow,  Dawn

Flaming Canyon
 

The Endless Range

The Endless Range
 

The Mountain,  Graceful

The Mountain, Graceful
 

The Beginning

The Beginning
 

Candyland

Candyland
 

Grand Finale

Grand Finale
 

Athabasca

Athabasca
 

Mountain Kingdom

Mountain Kingdom

 
The Black

The Black
 

The Frozen Desert

The Frozen Desert
 

November Seventeen

November Seventeen
 

AWAKENING

AWAKENING
 

Gone with the Tide

Gone with the Tide
 

Ice Lake Dawn

Ice Lake Dawn
 

Lightcatcher Peak

Lightcatcher Peak
 

The Shadow Realm

The Shadow Realm

 
Heaven's Gates

Heaven's Gates
 

Seasons Gone By

Seasons Gone By
 

New Lands

New Lands
 

Chief Mountain,  Dawn

Chief Mountain, Dawn
 

Going to the Sun

Going to the Sun


Amazing Paradise

Amazing Paradise
 

Canyon Wonders

Canyon Wonders
 

Canyon Life
Canyon Life

 
Sierra Dawn

Sierra Dawn
Ponderosa Forest,  Snowfall

Ponderosa Forest, Snowfall
 

Follow the Line

Follow the Line
 

SPANNING THE HEAVENS (Landscape Arch)

SPANNING THE HEAVENS (Landscape Arch)
15.평생 현역으로 살아가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80세 되는 해인
1893년에 작곡한 최후의 오페라 [팔스타프 Falstaff]를 본 관객이 물었습니다.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고 이미 유명인이 된 선생님이,
그 나이에 힘들게 왜 또 오페라를 작곡하신 겁니까?
그것도 엄청나게 벅찬 주제를 놓고 말입니다”
베르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왔네.
완벽하게 작곡하려 했지만 작곡을 마칠 때면 늘 아쉬움이 남았지.
분명 나는 완벽을 향해 한 번 더 도전해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네.”

이재규 교수 저,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나는 완벽을 향해 한 번 더 도전해볼 의무가 있다”는 말에 자극 받아
95세까지 평생현역으로 살았습니다.

평생현역에 도전하는 멋진 삶을 설계해 보는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조영탁 Dream

 

16.해뜨는 마을’의 박수일 목사

요한복음 10장을 목자장(牧者章)이라 일컫는다. 예수께서 3가지 종류의 목자를 들어 참 목자의 길을 일러 주셨기 때문이다. 첫째는 절도와 강도 같은 목자이다. 둘째는 삯꾼 목자이다. 셋째는 선한 목자이다. 절도와 강도 같은 목사는 설명이 필요없이 하나님의 양들인 교인들을 수탈하고 이용하는 악덕 목사이다. 우리 생각으로는 왠 걸 그런 목사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생각 외로 그런 목사들이 없지 않다.

두번째의 삯꾼 목사는 목사직이 직업이 되고 생활수단이 되어 양떼인 교인들을 돌아보는 일보다는 자신의 보신에 급급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본을 보여 주시는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섬기고 때로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참 목사이다. 슬픈 것은 한국교회에 삯꾼 목사는 많아도 참 목자가 적은 것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중에서나마 한국교회의 구석구석에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참 목사들이 있다. 그런 목사들이 한국교회의 희망이요 가능성이다.

그런 참 목사들 중의 한 분이 ‘해뜨는 마을’을 이끌고 있는 박수일 목사이다. 나는 같은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일 목사를 대할 대마다 고개가 수그러진다. 박목사는 평생을 길 잃은 청소년들을 구하는 일에 삶 전체를 투신하신 목사이다. 그냥 청소년들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어린 나이에 범죄의 길에 빠져들어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을 것 같은 청소년들을 자신의 자식같이 품으며 밤마다 철야하며 기도하기를 한 명 한 명을 위하여 목숨을 건 중보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사재를 털어 그들을 돌보는 보금자리를 꾸러 나가고 있다. 그런데 지난 16년간 그렇게 키워온 ‘해뜨는 마을’이 경제난으로 존폐의 위기를 당하고 있는 모습을 곁에서 보기에 너무나 안타깝다. 바라기는 뜻있는 동지들이 기도로 물질로 ‘해뜨는 마을’과 박수일 목사의 사역을 돕는 일에 나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해뜨는 마을 주소 :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 615번지
전화 : 031-534-7566 , 011-731-6317
후원계좌 : 농협 077-01-285776, 예금주: 해뜨는 마을
홈페이지 :
www.sunvil.kr

 

 

17.신뢰가 만드는 소망


우리에게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마술방패란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기에
우리는 문제를 축복으로 바꿀 수도 있고,
문제의 무게에 짓눌릴 수도 있다.

-빌리 그레이엄의 ‘소망’ 중에서-

아무리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 감정과 영혼을 건드리는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문제는
피하고 싶은 것이기 이전에
주를 신뢰함으로 이겨낼 수 있는
답이 있는 수학문제와 같은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우리 앞에 닥친 문제가 어떤 것이든
주께서 가장 좋은 답을 알고 계시며
그 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확신하십시오.
또 문제를 풀어갈 때 우리 자신의 생각과 지식에 앞서
말씀의 합당한대로 행하며 좁아도 옳은 길을 택하십시오.
주를 신뢰함으로 주의 방식대로 해답을 찾아갈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건해지고
문제는 어느 새 축복의 또 다른 이름이 될 것입니다.





 김정부



 김정부

일부 이미지 또는 태그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표시하기 | function org_mail_download() { if(confirm("이 메일의 내용을 모두 표시하는 것은 보안상 안전하지 않을 수 있어 일부 내용을 제한했습니다. 모든 내용을 보시려면 메일 다운로드 후 별도의 메일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합니다.\n\n메일을 다운로드 하시겠습니까?") ) { tipFunction('6'); return false; } return false; } 원문 다운로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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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향기좋은우리카페
글쓴이 : 변성량 (백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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