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혼자 살던 아버지가 죽었는데, 자녀들 하는 말이 기막혀

지와이원 2012. 8. 16. 14:39

 

무연고 장례 지원 첫 대상자였지만… 예산·규정 미비로
구청에 떠넘긴 복지부 - 살던 곳은 종로, 병원은 중구 시신 인계 받은 중구
"구청엔 관련 예산도 없는데…"
40만원으로 장례 치러라 - 빈소 대여료 최소 50만원 안치료만 150만원 넘었는데…
복지부는 정책만 만들어놓고 별도 예산 편성도 없이 기업·단체 후원만 기다린 셈

15일 오후 서울 중구의 백병원 영안실. 영하 5도의 시신보관함 앞에 박○○(78)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씨의 시신은 38일째 이곳에 있다. 정부가 가족 없이 혼자 살던 박씨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기로 했지만 예산과 규정 문제로 아직 빈소도 못 차린 탓이다.

박씨는 정부의 '무연고 독거노인 장례 지원 서비스' 1호 수혜자다. 정부가 정책을 발표한 지 5일 만에 발생한 첫 '무연고 독거 노인 사망자'라는 이유였다.

무연고 독거 노인이 사망하면 통상 빈소는 물론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이나 매장을 하는데,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봉사자·공무원을 상주(喪主)로 내세워 이웃에 부고를 전하는 등 최소 3시간 이상 장례식을 치러주라고 한 것이다.

박씨는 지난달 8일 새벽 서울 종로구 사직동 자택에서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 등으로 숨졌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40만원을 지원받으며 살았고, 오랫동안 당뇨를 앓아 거동도 불편했다.

앞서 3개월 전 뇌졸중으로 한 번 쓰러지기도 했다. 그의 시신은 도시락 배달을 하던 복지관 직원이 발견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박씨의 자녀들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 남과 마찬가지니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박씨가 영하 5도의 시신 보관함에서 38일을 보낸 사연은 이렇다.

당초 박씨의 장례는 거주지가 있는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맡기로 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연고 시신은 안치된 병원이 있는 지자체가 책임지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의 시신은 종로구와 인접한 중구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박씨가 숨진 지 20일이 지나 중구청이 시신을 인계받았다. 보건복지부는 다시 장례 절차를 논의하면서 중구청에 장례를 맡겼다.

복지부가 만든 '무연고 독거노인 장례지원 서비스' 매뉴얼에 따르면 사망자 1인당 40만원 내외로 장례를 치르도록 돼 있다. 빈소 대여료 10만원, 영정·액자 5만원, 꽃바구니 10만원, 장례식 봉사자 교통비 5만원 등이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구청에 관련 예산도 없는데 보건복지부가 하는 일이라고는 '병원에 협조를 구하라'는 것뿐"이라며 "일반 병원이나 장례식장의 하루 빈소 대여료가 최소 5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장례를 40만원으로 치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루 빈소 대여료 10만원에 맞추기 위해 구청은 병원 측에 "정부가 정한 최소 장례 시간인 3시간만 빈소를 빌릴 수 있느냐"고 문의했지만 "빈소를 하루 단위로 내주고 있어 몇 시간만 대여하는 것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박씨는 한 달 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해 하루 5만원인 시신 안치료만 150만원이 넘었다.

보건복지부는 장례 지원 정책을 만들면서 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민간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을 받거나 각 지역 병원과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건복지부와 협약을 맺은 병원이나 장례식장은 전무하다. 장례비도 지자체가 먼저 장례를 치른 뒤 보건복지부가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와 중구청은 지난 14일 박씨를 무연고 사망자로 직장(直葬)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후 2시쯤 "화장터에서 1시간 정도 장례식을 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본지가 취재를 한 직후였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빈소를 차리겠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 뒤에는 "화장장으로 가기 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3시간 정도 공무원과 봉사자 등이 참석해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다시 알려왔다.

박씨는 16일 서울승화원에서 화장된다. 유골은 경기 파주시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 10년간 안치되고 이후 산골(散骨·흙을 섞어 땅에 뿌리는 방식)한다.

 

 

 

 

 

 

 

 

 

 

 

 

 

 

 

 

 

 

을지대학교 황규성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려면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만큼 지자체, 지역 병원 등과의 협조 체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2.08.16

조선일보 김혜림 기자